벨리기스 예그의 "파도가 바다다" 라는 책에서 "21세기는 형이상학의 세기 입니다.
그 원동력은 철학이나 신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 찾을 수있읍니다. 자연과학을
통해 궁극적인 실재를 깨달을수있습니다."
라는 대목이 있다.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의미를 개인의 실재 느낌과 깨달음을 중요시 설명해 본 삼십년 전 라즈니쉬가 요즘 강의를 해 본다면 내용이
또 다른 실재감을 주면서 와닿을 것같다.
듣는 청중도 과학적 식견이 넓어져 폭 넓게 비유가
오고 갈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의 자연과학 발달이 설명곤란한 영적인 부분까지 구체화해주고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발달은 먼저 민주주의를 실현 시켜주었고 현대화를 이루게 했다.
인쇄술로서 지식의 대중화를 이루어주었고,
기술혁명은 노동의 무게를 덜어주었서였다.
그래서 나처럼 하루종일 식당에 일하는
하찮은 녀석에게도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고 느끼는 기회를 준다.
어떤 의미에선 운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있다.
그리고 뭔가 끄적그려도 크게 비방만
만 피하면 표현의 자유도 있다.
지동설 주장하다가 사형당한 갈릴레오를 생각해보면.
물론 교황청과 관계도 이유도 좀 되었지만도.
그래도 요즘 사람은 은하계를 파악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시대를 앞선 천문학자 갈릴레오보다 많은 별을 알고
있다.
이십세기초 허블망원경이 나옴으로서
별이 몇 천만개가 아니라 우리 은하계만으로도 천억개가 넘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단지 별 뿐만아니라 천동설에 의지해
세상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넓은 우주에서 먼지의 먼지보다 적은 지구에
살고 있다는 것도 파악이 된다.
그래서 하찮은 것으로 느낄수 있겠지만
우리 몸도 육십조가 넘는 세포로서 얼마나
많은 미생물과 싸워 나가는 지 알다 보면 미시 세계에서
또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세상의 끝을 알수가 없다.
다만 자연과학속에서 우리 존재의 신비감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 몸의 영양소를 흡수해서 에너지로
바꿔 주는 세포 속 미토콘트리아도 따지면
우리 몸의 부분이 아니라 자기 증식을 해나기 때문에 조정을 할 수없단다.
그런 하칞은 미생물이 없으면 우리 몸이 지탱이 안된다니
알고 보면 기적이 따로 없는 듯하다.
그런데 우주에 존재하는 파장을 연구하면서
동양에서 말하는 기와 영 같은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과학에서 보는 관점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이 부정되기 보다는 말할 수 없이 넓어진 느낌이 든다.
문 종명씨는 암 수술후 "우주마음 내마음"
하면서 맘의 큰 안식을 얻었다는 데,
나 역시 믿음에만 의지한 신앙에서보다,
세포 하나까지 우주의 보이지 않는 힘이
미친다고 생각하니 요근래 어느 순간 외로움
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종교적인 부분에서 구분이 아니니,
때론 주 기도문이 외고 싶을땐 위로 받는 데로 외고 구분을 애써 가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게 기적같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삶이 나을 수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아니 주어진 하찮은 내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우주의 뜻이지 알게 된다.
한편 어떤 의미에선 ,결국은 힌두교 경전처럼 삶이 윤회된다는 것인데, 부자로 태어나도 다시 부자로 환생
하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왜 신분 제도 카스트가 만들어지고,
현대까지 이어지는지.
종교성과 별도로 사람의 욕심같다.
메트릭스 라는 영화 2 편에서 동료를 배신하고 매트릭스로 짜여진 가짜 (?) 세상
에서 미국 대통령으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거래 장면이 있다.
카스트에 안주한 브라만처럼.
다른 한편 굴레에서 벗어나려 싸워 나가는 만화같기도 한 주인공처럼 우리의 삶도
나은 세상이 될 수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짜 인간의 길이고 , 해탈의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을 바로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신이
우리에게 준 임무이고, 신을 현재 속으로
와서 살게 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앞으로의 종교는 종파와 계율을 초월한 궁극적인 실재를 깨달는 쪽으로 간다고
한다면 과학은 한 부분에서 등불이 될 것같다.
과학을 바탕으로한 객관적인 사고와 관찰은 편협한
종교를 더욱 넓게 현대인의 가슴을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힘든 노예(?) 같은 이민자들의 삶속에서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평온을 가지게 할 것같다.
문 종명씨의 책을 읽고 나면서 그냥 지나는
생각들을 정리는 안되지만 줏어 담아 보았다.
그 약간은 촌스런 표현 "우주 마음 내 마음"
하는 염불 (?) 같은 주문에 중독되면서
뭔가 힘이 느껴는 진다.
말 자체 보다는 뭔가 이해가 되었다는데서
오는 공감대인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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