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밴쿠버 출장와서 허리 아파 누웠다가 에리히 프롬 '소유와 존재', '사랑의 기술'등을 읽고 들으며

박진양 2019. 4. 1. 15:40

 

 

 

 

 

 

 

 

 

 

 

 

 

 

 

 

객지(밴쿠버)에 출장 와서 며칠동안 허리 아파서 고생하다 미련하게 어제가 되서야 치료받고 누웠더니 생각이 많아 진다.

'영어책 한번 외워 받냐'는 김 민식 피디 책을 보면서 웃다가 에리히 프롬의 책들이

생각났다.

제목만 떠오르고 내용은 긴가 민가해서

요새 대세인 유튜브로 보고 일부는 다운로드

받아서 천천히 산책 겸 해서 공사하는 몰 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들어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내용이 좋아 말할려니 너무 길고 그래서

줄여 볼려니 더욱 힘이 든다.

이제 나이 드니 굳이 이 것 못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없어 그냥 조-은 책 이라고만 말하고 싶다.

에리히 프롬이 최근 사람인줄 (1900년 생- 1980년 사망)인줄 나또한 최근에 알았다.

'프로이트' 나 '칼 융', 처럼 이름이 클래식 해서 그 즈음 친구 정도인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 사람 생각은 지금에도 신선하고

앞으로 인류의 진화(좀 거창..)방향에도

영향을 많이 미칠 것 같다.

적어도 나 한테는 노년 삶을 준비하면서 외롭지

않게 해줄것 같다.

80년대 이십대 시절 반은 지적인 허영심, 반은

호기심해서 '소유냐 존재냐' 하는 책을 접했던 것 같다.

현세적인 소유욕보다 실존적인 인간이랄까.

뭐 본인의 느낌에 기초한 용기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정도로 이해했던 것 정도가 얼핏 생각이 났다.

다시 들어 보니 법정 스님의 '무소유' 랑 일맥상통한 것 같다.

즉 존재한다는 삶의 의미는

-.사랑하는 법에 있어서도 집착하지 않고

-. 아는 것에도 많이 암 보다 깊은 이해를

-. 모든 형태의 소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 나 자신외의 그 어떤 누구나 사물을 포함해서

나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실을 받아 들인

다는 것.

-. 궁극적으로 베풀고 나누는데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

정도로 요약 될까.

하지만 요약된 말보다는 본문 말 하나 하나 깨 씹으면 더욱 단 물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내 생활에서 가지는 존재의 느낌은 더욱

쉽게 다가온다.

물론 기본적으로 소유 또한 당근 중요하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대한 노력으로 와이프한테 쫓겨 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면피' 는 하겠지.

그리고 면피 정도 하면

존재의 느낌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을 주변에

많이 두면 될 것 같다.

부동산이 얼마나 있고 등 해서 재테크 열변 토하는 친구보다 집 렌트 살아도 농담 잘하고 밝은

친구, 먼 나라 여행에만 집착해서 엄살 떠는

친구보다 한 겨울 여행 안가도 토론토 머물며 겨울산행 추억에도 행복한 친구들이 존재의 삶을 산다는 친구 일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또한 한 참을 들어 보았다.

사실 얼마전 몬트리올 여행 하면서 아내와 함께 들으며

공감을 했는데 벌써 그냥 좋았다는 것 외에 생각이

별로 안나서 또 들었다.

책 제목으로 더욱 유명한 '사랑의 기술' 은 도울 김 용옥 의 '여자란 무엇인가' 에 이상 일 만큼 제목으로 낚이는 책 같다.

구체적인 연애 지침서가 아니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욕구를 통해 사람 심리의 근원을 사회적인 관계에서 찾아가는 지침서일까 싶다.

책 제목 보고 읽은 사람은 실망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생애에 대해 잠시 둘러 보면서 읽거나 들어 보면 더욱 깊이 와 닿는 듯 하다.

중간 중간 좋은 내용이 많고 육십 바라보는 나이에 들어보니 이제야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다.

다 적을수 없어 거의 마지막 부분

사랑에 대해 애기한 것만 적어 본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없이 자기 자신을

통채로 사랑하는 사람(솔직히?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대상)에게 맡기고 사랑을 불러 일으키리라는 희망을 갖는 것..

무엇보다 와닿는 것은 에리히 프롬의

철학 내지 심리학에 대한 견해는 관계에서 찾는 것이 지금 현 시대에 와 닿는 것 같다.

요즘 대세인 진화심리학도 결국 따지면 생물학적인 존재로서만 인간을 인식하는데,

생물학적인 존재로서 뿐만 아니라 관계 속에서

행복해진다 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 받고 싶은데 사실 사랑의 본질은 주는 것이라는 것,

즉 사랑을 준다는 주체가 나이고 나 부터라는 것을 에리히 프롬은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

그보다 딱 하나 와닿는 얘기하나는 에리히 프롬이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인 성격은

권위주의, 대세 추종적, 쾌락지향적, 시장자향적이라

말한다.

그 네 개중에 보충 설명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하는 일에서 보람을 가지지 못한 데서

쾌락지향적이 된다고 한다.

보람도 보람이지만 심심해서 일까도 싶다.

덜 심심할려면 소소한 것에도 나눌 의지가 있다면

도움이 될 듯해서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