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사르란 한 인물이 시대의 천재라 일컫는 그를 지나가고는 유럽
역사를 말할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존재같다.
유럽역사에서 로마를 빼놓을 수 없고 로마 역사에서도 케사르가 살았던 삼사십년의 기간에
사분의 일 이상을 역사 연구자들이 연구한다고 한다.
북미에서 방영되는 히스토리 체널에서 케사르에 대한 인물과 주요 전쟁사가 방영되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특히 갈리아 전쟁중 마지막 하일라이트가 되는 알레시아 공방전에 대한 프로도 얼마전인가 보았는 데 시오노가 쓴 글에서 처럼 그대로 묘사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전쟁사에 대한 책에서도 보면 그 공방전과 내전에서 폼베이우스와의 주요 전쟁 장면도 잘 묘사되어있다.
그런데 내가 알았던 케사르는 예수님이 말했던 카이저의 것은 카이저에 주라는 동전의 인물,
그리고 왕위를 탐내다 죽은 삼국지의 동탁처럼 암살 당해 부루투스 너마저 외쳤다는!.. 그 정도 였다.
조금 더 연장하면 폼베이우스와 크라수스와의 삼두정치 정도.
이번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케사르가 살던 그 시절까지 하면 로마역사가 칠백년이 되고 카르타고도 칠백년을 수명으로
사라졌고 아테네와 스파르타 역시 그 정도 나이에서 급격히 약해졌는 데 이 사람이 로마를
반석위에 올려 놓아 제국으로서 칠백년을 다시 출발하게 했다도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같다.
장사도 아이디어 하나 잘 잡으면 대박 나듯 나라도 사이즈에 상관없이 켄셉하나 제대로 잡으면
큰나라가 될 수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의 로마는 원로원체제와 민중세력간의 싸움으로 혼미한 시기
였다.
공화정 자체는 좋은 제도인데 나라가 커짐에 따라 지금의 미국처럼
원로원같은 특정 계층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게 되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불만인 민중의 목소리가 커져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고,
서로의 이상을 내세우는 지도자끼리 복수에 복수를 해서 피비린내가 가시지않을 때였다.
케사르도 술라라는 독재자를 피해 다니다 나이 사십이 되어서 비로소 출세를 한다.
역사가들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등장과 동시에 세계의 중심이 된
인물이라고 표현하는데 오히려 세계가 그를 둘러싼 느낌이 들 정도로 예가 없는 특이한 인물이란다.
그래서 준비된 지도자란 이런 것인가.
한지만 그로부터 칠년간의 갈리아 원정기를 읽어보면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분신같은 느낌이었다.
숫적 열세에도 말끔하게 승리하고 프랑스의 선조인 갈리아가 두려워하고
로마인들조차 두려워 하는 게르만 민족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한다.
그것을 당시 갈리아 원정기를 출판했을 때 동이 나고 원로원들의 젊은 자제들 가슴을 달구어 케사르 밑에서 일하는 것을
로망으로 삼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은 전투와 정치의 배합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이랄까
항상 이 순신 장군밑에 간신이 들어 유배하듯 서양도 마찬가지
당시 개발되지 않은 미개의 땅에서 축축한 전쟁의 현실속에도
로마국내에서도 정치세력을 유지해서 잘 이끌어 간다.
그것이 삼두정치의 의미인 것같다.
갈리아 마지막 가장 악조건에서 육만의 병력만으로 알레시아성에 팔만명 병력을
상대로 바깥으로 이십육만명을 상대로 최후의 전쟁 을 승리로 이끌어 로마의 북쪽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
그런데 이 전투는 역사가들과 전술가들의 연구대상이다.
나폴레옹 삼세까지 유적을 발굴할 정도이다.
그리고 로마로부터 받은 것은 탄핵이었다.
원로원 측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뛰어난 인물이 여세를 몰아 로마에 쳐 들어 올까봐.
그래서 고뇌에 찬 루비콘 강을 건너고 폼페이우스와의 내전..
힝상 슷적 열세에서 잘 싸우는 타고난 전략가였다.
사실 싸우는 것 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책을 보다보면 삼국지 이상 빨려든다.
삼성연구소에서 나온 기업인 삼국지인가를 본 적이 있는 데
자수성가형 그래도 좀 밑천이 있었던 조조가 대세였다.
법과 제도를 잘 정비하고 인재도 골고루 등용한
현실에 가까운 지도자형으로 묘사된다.
참조로 삼성의 이 건희 회장은 가업을 물려 받아 잘 성장시킨
손 권에 비교된다.
맞는 것같았다.
어쨋든 케사르를 보면 조조와 제갈공명을 합친 듯하다.
그래도 냉철하긴 해도 잔인하진 않다.
유머가 있고 뭔가 멋스러운데도 있고 담백한 면도 있어 인간 냄새가 참 많이 나는 듯하다.
갈리아 원정기에 이어 내전기도 출판했는데 원래 심플한 표현으로
쓰는 글을 더욱 같은 동포와의 싸움이라 말을 더욱 아꼈던 것이
무척 인간적이다.
비록 적이라도 전쟁자체를 일으킨 것은 늘 인정하는 그였으니.
상대방의 어쩔수없는 선택을 승리하고도 잘 이해한다.
사람을 증오하지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약속만 지켜주면 이민족이라도
보복을 않고,
특히 같은 로마사람은 삼가했다.
원래 증오는 낮은 사람이 윗쪽으로 가질수 있는 감정이랄까.
절대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래쪽으로 가지는 감정이 아니고.
있다면 연민의 정이 들지 않을까 싶다.
부루투스에게 가진 감정이 이럴꺼라는 생각이 든다.
케사르를 암살한 주동자인 부루투스는 시오노가 좀 찌질한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실상은 시오노가 표현한 이상의 내공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루투스의 엄마와 케사르는 평생의 연인 관계였다.
내전에 휘말려 케사르와 대치해서 죽을 뻔 한것도 케사르가 말단
병사에 까지 지시를 내려 구했던 목숨이다.
그랬기 때문에 도덕성 높은 부루투스에게도 고뇌가 깊었을 것같다.
하지만 부루투스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공화정 복귀를 위한
대의명분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동의를 얻지 못한채 모든 암살 주모자들은 로마에서
달아나야만 했고 캐사르는 건국의 지도자 로물루스 다음으로 신격
으로 불리게 되고 사후에 더한 권위를 유지했던 것같다.
이태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암살이 있었던 삼일오를
"회고자들의 자기도취가 초래한 무익하고 유해한 비극"
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카이사르의 비극이라기 보다
부루투스 자신의 비극이라고 시오노는 말한다.
시대에 거부당한 고결한 정신의 비극이 아니라,
시대에 눈 감은 고결한 정신의 비극.
케사르는 당시 성장하 는 로마에 맞는 국가체제 개조와 로마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것을 평생 목표로 살았는데 사후에 더 빛을 본 것같다.
오히려 순교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가능하면 내전중에도 중재의 노력을 포기하지않았고
승리하더라도 희생이 덜 되는 작전으로 선택하고 나라
정권을 잡고도 반대파에 대해 사면과 복귀를 허락했고
그 전 독재자 술라처럼 공포심을 주지않을려 로마시내안에서
호위관 없이 무장하지 않으채로 다녔다.
분명 살해 당할 위험을 본인도 알았을 것같은데
공포에 바탕에 깔린 증오심을 의식해서인지,
군인으로서 강한 모습보다 시민과 함께 나누는 편한 모습으로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그 암살은 로마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래서 유서로 열아홉 청년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삼고
후계자로 삼는 것이 지켜준 힘이 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유지를 받들어 로마를 탄탄대로에 올려놓고
아우구스투스라 불리게 된다.
이태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이렇게 실려있다고 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 다섯 가지이다.
지성. 설득.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어쨋든 전쟁의 역사라 피비린내가 나지만도
그 속에 숨쉬는 여러 인간의 모습과 각자의 선택이 클레오파트라
까지 등장되며 흥미가 넘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케사르의 암살은 비극인데도 그냥 냉철한
판단사이로 빙그레 웃는 장난끼 조차 머금은 케사르가 옆에서
지켜보는 듯하다.
로마이야기가 길면 케사르 편 두권은 권하고 싶은 맘이 든다.
일단 재미있고 성경에 나오는 지명 또한 친숙해져 조금 해박해진
느낌이 들 것같다.
무엇이든 재미있어야 머리에 남는 것 같은 것이 이 책들을 보며
읽었던 느낌이었다.
정말 생각나는 명장면이 하나있다.
케사르가 내전까지 종식하고 화려한 개선식을 전 로마시민들앞에서 가졌다.
그 때 십이년동안 동거동락했던 고참병이 구호를 합창했다.
"시민들이여! 마누라를 숨겨라. 대머리 난봉꾼이 나가신다!"
같은 시대에 중국에서 하나님의 아들, 천자라야 나라를 다스릴수있다고 생각하고
로마에서는 최고 권력자가 옆집 아저씨같은 모습이라도 가능한 나라의 모습에서
정신 문명의 바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비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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