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6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박진양 2012. 12. 30. 11:11

 

 

 

 

이천팔년도 쯤인가 차형이 책을 보내 주었다.

로마인 이야기 라고 일본인 여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책인데 원래 전집 열 몇권을 다 보낼려고 해서

식당일 하면서 볼 시간이 없을 것같아 한두권만 얘기했더니 그 중에 제일 엑기스인 시이저라고 알려진

케사르에 대한 두권을 보내 왔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위로를 가장 많이 받는 것 같다.

한 번 책장을 펼치고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로마를 토대에 올려놓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시공을

초월해서 케사르가 옆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스물일곱정도인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후 로마에 가서 정식 교육은 받지 않고 그 곳의 

도서관이나 자료실과 여행으로 사십년을 전전하면서

발로 쓴 느낌이 드는 역사 이야기라고 해야할지. 

아마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가 있었을 것같다.

혹자는 시오노 나나미 보고 역사책이 아니라 상상이

너무 들어간 소설책이라고 혹평도 했다는 데

그 사람 얘기이고 내게는 세상이 새로 보일 정도로 좋았다.

내가 역사학자로서 자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깐.

나의 문화 답사기를 쓴 유 홍준 씨 처럼 역사를 옆 동네

얘기 하듯 친근하게 써 내려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와 다아듯이 요즘 얘기하듯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젊었을 때 또 하나의 숨은 역사 비류 백제에 대한 책을

사 보았으나 아직 반도 못 읽고 있다. 

다 한문에, 문장도 딱딱해서 잠 올때 읽으면 잠은 잘왔다.

진짜 역사책은 돌처럼 무거운 느낌인데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다보며 몸을 감아오는 비단옷을 걸치고 뛰어가는

듯 하다. 역사의 바람속으로, 오랜 군내 조차 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살냄새와 숨결이 느껴졌다.

그래서 에이! 첨에 다 보낸다고 할 때 받을 걸 후회하며,

나중에는 조금씩 사다 보니 열다섯권을 다 사다 보게 되었다. 

특히 첨 보게 된 케사르 얘기에서 엄청난 인스프레이션을

얻었다. 

식당을 하다보면 열명 넘는 사람이 모여 조직을 이루어

내의지와 상관없이 인간관계에 얽히고 스트레스도 받게

되는데 나랑 다른 견해차이에서 제일 많이 받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해 주길 바람는 맘이 좌절되었을때.

인간관계에 모든 종합 서적보다 케사르와 함께 할 때

나도 모르게 무엇이 많이 느껴졌다.

최소한의 아무리 작은 조직일지라도 리더로서 짊어지고

나가야할 맘 가짐등..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정말 이 사람이 그 때 얘기했을까 하는 맘이 들 정도로

 군인으로서 정치가로서 짊어지고 나갔을 외로움이

 참 공감이 갔다.

 그렇게 일고 나니 자연스레 전후가 궁금해져 쭉 읽었는 데

 그 해의 큰 기억이 되고 새로운 멘토가 된 시오노 나나미를

 끼고 살았던 것 같다.

 수많은 강대국 속에서 로마가 성장하게되는 과정과

 그 바탕이 무엇인지 짚어 가며 상식과 상식을 토대한 법이

 이루는 결과를 보며 참 많이 공감을 했었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는 에트루이아인보다 못하고,

 경재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이라고 로마인 스스로 인정을 한다."

 그런데도 로마가 융성한 요인에 그리스의 세 학자가

 첫째는 인간을 계율로 다스리기보다 인간을 수호하는

 형태의 로마 종교가 광신 적인 경향이 없고,

 그래서 다른 민족과의 대립보다 공존이 쉬웠고,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른 민족의 존재를 인정하는 뜻이다.

 둘째는 로마의 독특한 정치체제인데 공동체 일부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경향이 있는

 왕정과 귀족정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를 고집하지 않고 원로원제도를

 통해 귀족정의 장점을 살리고, 민회를 통해 민주정의 장점을 살린 로마공화정도 요인이되었다.

 세번째는 패자까지 포용하여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포용성과 개방성을 꼽는다고 했다.

 그런데 캐나다에 이민와서 살아보니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인종과 피부색도 다른 사회에서 법의

 귄위 아래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로마가

 진정 꿈꾸었던 이상향이 이천년이 지난 북미에서 발견

 되는 것같다.

 캐나다는 사회적주의 냄새가 풍기는 민주를 근간으로한

 법치 국가이다.

 그래서인지 경찰도 많이 보이지 않는데도 질서가 잘 잡혀

 있는 느낌이다.

 경찰한테 대드는 모습도 거의 볼 수없고 장관이라도 교통 경찰한테 지시를 따른다.

법이 지켜지고 법의 권위가 살아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종교는 느낌에 따라 기준도 애매하고 그것을 공유하지

 않으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당시에도 종교에 맡긴 유대인과 철학에 맡긴 그리스인과 법률에 맡긴 로마인을 보면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는 것같다.

 철학도 공감되지않으면 개똥철학이 될 수있지만 법은

 가치관을 공유하지않는 사람사이에서도 효력을 발휘하고

 오히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법을 필요로 하는 것같다.

 그리고 이념에 사로잡히지않아서 현실을 직시할 수있어 능력위주로

인재를 등용한 것도 사실 큰 요인이 될 수있지않을까 싶다.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레스라고 지도층에서 혜택받은

 만큼 공동체가 어려울때 솔선하는 태도에서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한국에서 지인은 나보고 개고생을 한다고 하면서

 한국이 얼마나 잘 사는지를 얘기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시점인지 해외에서

 삼자입장에서 보니 느껴지는 바가 또 있는 것같다.

 옆집 잘되면 배 아프듯이 한국이 잘 되면 이웃 모든 나라가

 속으로 까칠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것같다.

 물론 겉으로는 칭찬하고 있지만.

 삼성의 이 건희 회장이 해외에서 삼성 물건 하나 팔려고

 얼마나 견제를 많이 받고 있는 지 상상못할 꺼라는 말이

 참 해외에 사니 공감이 많이 간다.

 우리도 로마를 바라보며 우리 현실에서 보충 받을 것을 받으면 안 될까 싶다.

 보편타당한 상식의 힘..

 얼마전에 대통령 선거를 끝내고 젊은 충에서는 좌절감을

 느낀다는데 기회는 또 오고 한번 뽑은 것은 총력을 다해

 밀어주는 것도 로마의 힘이었던 것같다.

 일단 기존의 법을 지켜 나가는 것부터 순서가 아닌지.

그 것은 법 이전에 당연한 상식인 것같다.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조그만 희생을 받아들이는 로마에서 뭘 가져와야겠다.

 앞으로 한국이 필요한 것은 희생이 따를 수있는 분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귀족과 평민이 대립하고 싸우다가도 일단 결정되면 지켜주는 로마인인의 법에 

대한 개념도 생각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