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가 어느 순간에 늘 있었던 것이 새삼스럽게
느낄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또 다른 삶의 폭이 넓어짐을 느낀다.
친구일 수도 있고 어떤 일이 될 수도 있고 책을 읽다가
문득 새로워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캐나다에 살면 살수록 어떤 때는 객지라고 생각
해서인지 징그러울 때가 있다.
첨엔 친절해보이는 캐너디언도 어느 순간에는 가면의
미소로 느껴지고 예쁘장해 보이는 여자 손님은 동서양이나 인물값한다고 싸가지 없는 짓하는 것 보면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
물론 나이 오십에 사람이 싫어지지 않으면 그 또한
잘못산거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래서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던가.
요 며칠전에 빨간머리 앤을 읽었다.
한국에서 만화영화도 하곤 했던 것같은데 어렸을적에는
여자애들 보는거라 생각해서인지 관심이 없었고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즉 피이아이에 갔었을 때도
그 작가가 사는 집에 관람은 했지만 그런가 보다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어보고는야 캐나다에 살면서
이 책은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작가 몽고메리가 사는 그린게이블에 가 봤을때는
조그만 집에 뭐 이게 대단한 구경거리가 될까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무심코 몇 장을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자연에 대한 친화력과 상상력, 그리고 표현력이 아마
옛날 선사가 환생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한글로 쓰여졌지만 여기에 오래 살다보니 익숙해져
서인지 앤이 말하는 투와 애 들 얘기소리가 바로 옆에
들리는 듯 했다.
첫장에 고아인 앤이 유월초에 입양하는 장면부터 시작
되는 데 정말 캐나다에서 유월은 긴 겨울의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아름다운 시간이라 너무나 실감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력 풍부한 몽고메리도 겨울 얘기는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겨울은 그 때 기다림의 계절이었던 것
같다.
긴 겨울이 있기때문에 그렇게 캐나다 아름다운 계절의 자연을 잘 묘사할 수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몽고메리가 사는 그 집을 유월에 갔었지만 그 정도
맘이 들지는 않은 것을 보면 그 감수성과 관찰력에
탄복했다.
그 때는 젊어서인지 지금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맘이 든다.
사람에 지친 맘을 묘사된 숲 길 한장면으로 치유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시점이 십구세기 말 정도로 되어 있어
장면이 흘러갈 때 마다 역사적인 무대가 연상이 된
캐나다의 살아있는 역사를 느끼게끔 하는 것같다.
캐나다가 자랑할 만한 작가인 것같다.
매년 앤에 대한 연극과 뮤지컬도 상연되는 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보고 싶다.
그리고 앤 시리즈는 우리가 대개 아는 앤의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고 할머니가 된 시점까지 이어지는데
이번 겨울에 영어로 된 책을 사서 읽을 예정이다.
캐나다의 대하소설이 아닌가 싶다.
여기 살다 보니 캐나다 시민권자임에도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번지수가
희박해지고 또 캐나다에 대해서 잘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아 정체성의 혼돈이 온다.
이번 기회에 내가 사는 곳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있는
계기가 되지않을 까 싶다.
당시에 그 조그만 섬에 철도가 있고 기차가 왜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영국을 중심으로 영국과 가까운 대서양의 섬이 통치와 관리가 용이해서였던 것 같다.
피이아이를 포함한 네개주가 모여 캐나다 연맹을 선포한
곳도 피이아이의 샤롯타운이다.
지금은 물론 온타리오 특히 토론토인근을 중심으로
미국과 무역이 쉬운 이 곳이 중심이 되었지만 백 년전만
해도 다른 분위기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보면 피이아이 근처 토론토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세인트 존이 왜 금융중심지가 되었나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시리즈가 계속 되면서 앤이 커서 일차대전의
현장속으로도 가게 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커나간
고아 소녀 앤이 어른이 되서 무슨 생각과 맞딱드린
현실에 어떻게 판단하는 지 무척 궁금해진다.
책이 처음 나오기는 몽고메리가 뉴욕에서 활동하던
천구백팔년도 인데 일본사람도 같은 섬이어서인지
아님 유렵을 동경해서인지는 몰라도 관심이 많았던 것같다.
그리고 빨간머리 앤이라고 만화로 나와 유명한 것 같은데
만화를 보지 않아 할 말은 없지만 스토리도 재미는 있지만
아름다운 캐나다의 숲 속과 벌판을 만화에 담기는 한계가
있지않을 까 싶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산다면 책으로 한번 보는 것을
권하고 싶고 그런 앤이 커나가는 시간까지 연결해서
캐나다를 느껴 본다면 좀 더 캐나다에 애정이 느껴질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 또 다른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동서남북 광활한 자연의 복판에 사는 캐나다에서
더욱이 자연을 멀리 하면 외로워 말라버릴 것같다.
어차피 살아가야 하는 이민 생활인데 자연을 벗삼는
길동무로서 앤의 손을 붙잡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몽고메리가 살았던 피이아이도 정말 아름답지만
사실 캐나다 전체가 아름다움의 평준화가 되어
지금 내가 사는 토론토 작은 동네의 공원도 아름답다.
마음이 바빠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왜 빨간 머리 앤으로 번역했을까 생각해보면
원작의 이름 그린게이블의 앤 즉 푸른 지붕의 앤보다는
튀는 맛이 있는 것같다.
그런데 몽고메리는 앤이 사는 그린 게이블과 마을에 반 이상을 묘사하며 정열을 쏟아 부었음이 느껴져서인지
그린게이블이 편안하게 와 닿는다.
여기 캐너디언들은 일본이나 한국사람만큼 외모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고 그냥 고아소녀에 미운 오리
새끼 정도로 묘사되는 빨간머리의 주근깨와 뾰죽턱과 야윈 체격 등 한 부분일 뿐이었던 것같은데.
동서양의 문화차이인지.
어쨋든
그래서 올 겨울은 심심할 시간이 없을 것같다.
중년이 된 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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