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66. 사육신 미스터 강

박진양 2012. 10. 4. 10:50

그즈음 주방쪽에서는 또다른 미스터 강이 활약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성악에 관심이

있어 성악을 대학에서 또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노래방을 가면 심사위원을 맡았다.

여러가지 전문용어를 섞어 해설을 하고 성적을 발표하고

그러면 몇주일은 우려 먹었다.

우리 식당에 처음 왔을 때 언론인 출신 답게 고지식했고

사뭇 우울했는 데 시간이 지나며 맘도 풀렸는지 가끔식

추운 농담도 던지면서 잘 어울였다.

그런데 아주 직선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차근히

설명을 해 주면 한 번 받아 들인 것에 대해서는 잘해났다.

그런 분은 시간 개념도 정확해서 절대로 지각하는 법도

없고 책임감이 강했다.

사실 조선시대 선비의 기개가 느껴지는 대쪽 같은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항상 해맑은 장난기가 스쳐가는 얼굴에 사뭇 진지하게

뭔 말을 하면 고급 블랙 코메디 같은 느낌이 있어

모두들 웃곤 했다.

부인도 성악 전공때 만난 피아니스트 출신이라

피아노 교습도 하고 어떤 때는 한인 행사시에 심사위원으로 나오기도 했다.

나중에는 애들 데리고 한국이 벌이가 나아서인지

한국으로 가게 되었고 미스터강도 올해 초인가

한국 들어 간다면서 식사 하면 하자고 전화가 왔었다.

한 쪽 다리가 조금 불편했지만 본인이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다.

취미가 클래식 음악 감상이고 오디오도 조림을 잘했다.

캐나다에서 쓰지않는 물건은 집밖에 내 놓기도 하는데

그러때 필요한 사람은 가져 가면 된다.

어떤때는 너무 좋아 보여 의심쩍어 그 집 주인에게 물어

보면 가져가라고 정확히 얘기를 해준다.

그래서 미스터 강은 가끔 옛날 진공관 오디오를 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중고품가게에 가면 쓸만한 물건을 건지는

수도 있다.

그럴때 마다 한 일주일은 흥분되어 얘기 하고 또 하고 했다.

사람이 맘이 편해 지면 애 처럼 천진 해지고 심각하면

옆에서 말도 붙힐 수없는 어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미스터 강은 어른으로 들어 와서 더욱 젊게 일을 했던 것

같다.

그 뒤에 식당을 넘겨 줄때까지 자리를 지켜준 라스트

모히칸 족이 되었다.

나중에 여기 식당으로 왔어도 종종 만나 소주 한잔하며

이민 생활 얘기도 하고 그 전에 신문기자로 있었을때

얘기도 듣곤 했다.

그리고 직원 분들을 많이 소개 해주어 또한 고마웠다.

일 하는 분은 일 하는 사람의 소개로 올 때 좋은 만남이

많았었다.

나중에 헌국에서 산악회 선배님의 아들이 왔을 때

방 세놓는 미스터 강 집에 소개해서 잘 있다가 가기도

했다.

한 동안 안 봤다고 느끼면 꼭 전화 한 번씩 해주곤 했는 데

요 근래는 한국가서 바쁜 모양이다.

잘 있는 지 궁금한데 요새 같으면 카카오로 연락을 할텐데.

또 좀 기다리다 보면 전화가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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