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64. 공주의 종결

박진양 2012. 10. 4. 02:56

한국에서도 요즘엔 이혼율이 높다지만 캐나다에서는

통계는 조사할 기관이 없어 모르지만 적지는 않은 것 같다.

한번 결혼하면 끝까지 잘사는 게 기본이지만 남 사는데

한마디로 어느 것이 옳다고 함부로 말할수는 없는 것같다.

그런데 친구들이나 주위의 아는 사람의 경우를 보면

한국같으면 무난하게 살아갈수 있는 사이인 것 같은데

헤어지기도 하고 또 한국같으면 애들 문제와 생활고 때문에 여성쪽에서 엄두 못내고 참고 살수도 있지만

보고 듣는 것이 많은 캐나다에서는 여성쪽에서는

보강된 자신감으로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지 주위의 친구 대부분은 여성쪽에서 먼저

요구하고 남편쪽도 사인하고 그렇게 헤어진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여자쪽에서 요구했다고 그분들이 대가 세서 그런것 만은

아닌것 같다.

그런 상황으로 남자쪽에서 조성을 해놓아 할수밖에 상황에 어쩔수없이

선택을 하고 남자쪽이 사인하고 나면 남자는 쪽박찬다.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남자쪽에서 결혼전에 거짓말해서 캐나다에 부인을 수입해

그것까지는 좋다하더라도 그 뒤에 생활을 책임지지못한경우, 불륜을 저지르고 인정만이라도

요구하는 순진한 부인에게 끝까지 우긴 경우는

말리는 내가 봐도 참 어찌할 수없었다.

또 남자는 너무 착하고 이민사회에서도 소문난 나이스 맨이지만 생활이 힘들다고 한

경우인데 내가 봐도 안타깝지만 둘 만의 사정은 둘이외는 몰라 함부로 판단할수는 없다.

중요한것은 이혼뒤에 여기 캐나다 법이 약자인 여자 위주로

되어 있어 집 비즈니스를 포함한 모든 재산을 둘로 똑같이

나누고 여자쪽에서 결혼할때 까지 생활비를 대 주어야 한다.

오죽하면 재혼하는 전처의 결혼식에 고마워서 신랑되는

사람에게 전 남편이 고마워서 악수를 하고 뱅쿠버에서는

이혼 세번 후 남편되는 사람이 전 처들에게 주는 생활비로

인한 생활고로 비관하여 자살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예 배째라는 식으로 버티는 한국사람은 대체로

못 말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중간에 내가 결혼전에는 이혼을 막다가 후에는

매달 체크가 늦는다고 대신 심부름을 해준다.

물론 변호사에게 일임하면 알아서 돈 받고 잘해주지만

애들 엄마 아빠로 연결된 고리에 법이 계속 개입되면

감정 상할까봐 참는 데까지 참고 주위에서 조금 신경

쓰주곤 한다.

그래서 어떤때는 남자쪽인 친구한테 니는 누구편이냐고

불만을 받은 적도 있었는 데 니 편 내편이 어디 있냐

애들은 잘 커야 하고 우리 이런 얘기는 시간이 지나

육십다섯 넘어서 하자고 했다.

오지랍이 죄인지 나도 그런 경우가 난감하다.

그래도 누군가가 스프링 역활은 필요한 것같다.

어쨋든 이혼하더라도 한국만큼

애들이 방황하지는 않는다.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애들도 대체로 쿨해서 엄마 아빠의

문제이지 캐나다에서는 자 신의 문제는 아니라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이혼후 부모들이 서로 정해진 시간에 애들을 따로

만나고 애들의 캐어가 필요할때는 서로 부탁도 한다.

이혼하더라도 그냥 물 처럼 냄새없는 친구 같은 사이도 있다.

그즈음해서 웨이츄레스 스탶으로 아가씨 비슷하게

생긴 애둘있는 싱글맘께서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삼십대 후반 정도 되었어도 아주 마음이 순수해서인지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공주의 마지막 종결자라 생각하면 되는 분위기라

이런 사람이 일을 할 수있을까 싶었는 데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조금씩 일의 영역을 넓혀갔다.

주희씨라고 애들도 너무나 이쁜 두따님이 있었고

가끔식 식당에 놀러 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꽃게 매운탕에 꽃게 양념장을 했던가 그랬는데

식탁에 앉자마자 난 게는 누가 발라주지 않으면 않먹는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뻥치고 우리 매너 좋은 미스터강이 발라주고 보는 주방언니는 열받아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명문대를 엄청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인지 열등감이 없고 진정한 자존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영혼 자체가 맑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기는 너무 좋은 부모님밑에 쉽게 살았고 결혼해서도

부유했지만 철이 없었다고 그런식으로 솔직히 얘기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또 한국사람 정서가 그런 얘기 듣고

앂을려는 사람은 없다.

인간적인 모습이 공감하고 서로 도와서 해볼려는 분위기가 주희 공주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식당에 새로운

에너지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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