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캐나다의 번지없는 한국 명절

박진양 2012. 10. 1. 15:05

 

 

한국의 명절날이면 캐나다에 살면서 참 슬퍼지는 날이다.

추석날 둥근 큰 달을 쳐다보며 그래 니눈을 니가 찔렀는 데 뭐!

하는 맘이 든다.

명절이 오기 전에는 평소에 전화도 못 드렸는 데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

기다리는 데 막상 그날이 이렇게 빨리 닥치는 지 모른다.

돈 좀 벌어 송금도 하고 해야 체면도 서고 할말도 있을 것 같은데

하루 하루 쫓기 듯 하루의 마지막 자락에 전화할려는데 면목도 없는 것 같아 그냥 접고 아침으로 전화하는 것을

미루어 아침에 일어나서 더 바쁜 시간에 겨우 전화를 드렸더니 한국은 추석날

밤이고 주무시는 아버님 어머님 깨워서 문안 인사도 아니고..

이렇게 시간도 못 맞추고.

한심하고 미안한 생각에 뭔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 데

아버님은 편안한 목소리로 애들 잘있는 지 묻고 어머님은 애 들 그만큼

키웠으면 잘 산거라고 위로를 해 주시는 데 참 부끄러워 발가락이 오르라

들었다.

그래 모든 것은 신경쓰고 계획을 해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미리 명절 오기전 일주일 전부터 생각하고 애들도 함께 시간을 맞추어

한국에 문안 인사를 드려야겠다.

돈벌어 다 한다 생각하니 죽어도 못할 것 같고 이제는 한국의 혼을 심어

주기위해서라도 내가 좀 신경쓰고 정성을 다해야겠다.

미안한 맘 지우지 못해 밤의 자락에 술잔을 닦아도 아침에 일어 나면

속만 쓰리지 말고 찌질한 내 현실을 편안하게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야겠다.

그렇게 해서 댕기는 맘을 뒤로 하고 출근을 해서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한국에 전화를 드렸냐고 물었더니 오늘밤에 하면 되는 걸로 착각해서

못했단다. 오늘밤은 한국에서 추석 두번째 날인데 여기에서 챗바퀴

돌듯 살다 갑자기 한국을 생각하면 열한시간이 빠른지 늦는지가

헷갈리는 모양이다.

내만 그런 것 같지 않아 위로도 되고 안되도 보였다.

스물두살 젋은 청년 한테 물었더니 당연히 란다.

아까의 그친구는 나이 사십에 애가 셋 되니 나 못지 않는 생활의 굴레에

허덕이는 듯해서 아마 정신없이 하루에 쫒기며 사는 것 같다.

한국에는 추석이라 한구적 음식 떡국먹는 다고 직원들께 얘기를 했는데

저녁에 혜진이 엄마가 와서 한국식품점에 떡국 떡이 다 떨어져 못사고

송편만 몇 개 사왔다.

다른 교민들도 설날에 먹는 떡국이지만 명절이라는 것 만으로도 한국

적인 정서가 젖어있는 떡국이 생각 났던 모양이다.

오늘 저녁은 그래서 사시미에 김밥을 먹고 지나갔다.

그리고 혜진이 엄마가 약과 선물 세트를 사와서 주급 주면서 다 나누어 주고는 미안한 맘을 대신 했는 데 고맙게 받아 주어 진짜 고마운 맘이 들었다.

한국은 명절이지만 이나라 사람에게는 아무날이 아니게 그냥 지나가는

날이라 고향 생각이 많이 나는 날이고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 지

후회가 되는 날이다.

물론 내가 선택해서 이민을 왔지만 인간으로서 후회 없다 하면 인간미가

떨어 지겠지.

오늘 같은 날에는 이미 온 것을 후회도 해 보는 공식적인 후회의 날이다.

아마 다른 많은 교민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앞으로 조금만 신경을 더 써서 한국을 돼새기고 애들과 또 함께

일하는 직원분들과 나누는 날로 정해야겠다.

돈이 문제도 아니고 삶에 지쳐서인 것같다.

기왕에 사는 인생인데 조금더 신경써서 모두들 즐겁게 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 나이 들어가며 나이값을 하는 것같다.

어차피 돈은 너무 신경 쓴다고 버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조금 내려 놓고

돈에 맞추어 적당히 찌질하게 적응하면 되고

명절은 즐겁게 기념 할 수있는 것은 내 성의에 달린 것같다.

다가오는 신정 구정 모두 내가 정성을 다해 한국이 있는 동쪽으로

목을 길게 빼고 절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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