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8 년만에 가 보았던 한국 그리고 둘러가는 항공편

박진양 2015. 2. 10. 04:59

 

식당 구입 오퍼를 넣고도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와이프가 한국을 다녀 오자고 했다.

식당 물품도 구입하고

또 나깉은 경우에는

십팔년동안 한국을 가 보지 못해서

어르신 건강하게 살아계실 동안에 인사를

드리자면서 권하는데, 쉽게 결심이 서질

않았다.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려면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비행기표 이며 선물도 사고 하면 최소한

이만불은 들 것 같은데, 새로 식당을 할려면

뒷 돈도 있어야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아내는 비행기표는 미국 거쳐 가는 편으로

하면 천 불 정도이면 되고, 어쨌든 부모님

살아 생전 얼굴 못 보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강권을 했다.

십구년전에 처음 이민와서 이웃의 아는 분

가게를 셋엎할 때 옆에 맘씨 좋게 생긴 아저씨가 세탁소를 접는다고 웃던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서울대 나와서 서독 광부로 갔다가 토론토에 정착을 했는데, 세탁소에서 일을 하다가

돈을 벌어 인수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 이십오년 동안 세탁소와 집

교회 밖에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처음에는 빌린 돈 갚느라 일하고 빚 갚고

돈 벌려 하니 불경기가 와서 겨우 버텨오다

마침내 문을 닫는 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여행도 하길 권했다.

어차피 기반 없이 해외에서 산다는 것이

언제 남 보기 뿌듯할 정도로 살 날이 올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내 아는 친지와 친구에게

자랑스런 모습을(?) 포기하고 얼굴이라도

솔직히 보고는 싶었다.

막상 그렇게 맘을 먹고 나니 설레였다.

선물은 안산다고 해도 실상 안살수는 없었다.

인기가 최근에 떨어져도 캐나다 산 오메가

가 만만해서 40 병 정도 사고 간단히

몇 가지 산다는데 역시 예산보다는 많이들었다.

미국을 거쳐가는 비행기는 싼 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로웠다.

뉴욕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6시 정도에 공항에 나갔다.

검색후에 아침을 먹을려니 마땅히 먹거리가

없었고 비싸기만 했다.

9 시 남짓해서 뉴욕가는 비행기를 타고

케네디 공항에 내려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공항안에 전차를 이용했다.

그런데 대단히 번거럽고 헷갈려서 여기에서

살다보니 찾아 갈수 있지만 영어 서툰 어르신께는 권할수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12 시가 다 되어 밥 먹을려니 정말

먹거리가 마땅찮아 중국 페스트 풑을 택했는데 일하는 직원은 다 흑인들이었는데

맛은 아예 포기하고 배가 고파 그냥 밀어

넣었다.

물론 가격은 비싸다.

음식 가격이 이 비싼 뉴욕 맨하탄 다웠다.

이래서 한사람 당 삼사백불 아낀다니 참을만 하고

한국을 간다는 기대감에 마음은 들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