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하다보면 늘 숙련된 직원이 아쉬웠다.
야기에서는 보통 헬퍼라 부른다.
주방 헬퍼 평균 근속이 삼 개월이라 얘기 하곤 한다.
일이 그 만큼 힘 들기때문이다.
그리고 디쉬와셔 쟙도 정말 힘들다.
이민오기전에 접시닦이로 돈 벌어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전설을 책같은 데서 낭만적으로 생각했더니
정말 바쁠때 그릇 닦느라 두어시간 싱크대에 매달려
있어보면 노동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온갖 허드렛일 뒷일은 도맡아 한다.
그래서 디쉬와셔 자주 바뀌고 없으면 다른 스텦이 도맡아
하다 지쳐서 관두기도 한다.
다행히 디쉬와셔를 해준 젊은 친구들이 있어 식당의
후방이 든든했다.
울산에서 울산 대학다니다 온 미스타 한이 디쉬와셔를
너무 잘해주고 떠났다. 어학연수로 사스카츈에 있다가
토론토에 와서 식당에서 디쉬와셔하면서 저녁에 퇴근후
삼십분씩 현지 방송을 집중력있게 보는 것으로 영어공부를 대신했다고 했다.
그리고 쉬는 날 하루 튜터와 한시간 영어토킹을 했는데
여태 본 친구들보다 영어가 가장 많이 늘고 갔다.
팔개워있는 동안 그전에 토익 칠백점에서 팔백육십점까지
뛰어 올랐다.
여기 학원 다녀도 별 효과 못보는데 비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그 친구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친구랑 식사하러 왔는데
그때 식당이 너무 바빠 앉을 자리가 없어 한참을 기다리다
한쪽 구석에서 겨우 밥만 먹고 떠나보내 무척 아쉬웠다.
그리고 뒤를 이어 구병진씨가 자리를 맡아 경상도 사투리를 충청도 억양으로 쓰는 느낌의 느긋한 친구가
힘든일 마다않고 잡음하나없이 일년 가까이 맡아 주고
떠났다.
그 친구도 울산대이고 미술을 전공했는데 얼마나 싹싹하게 해주는 지 웨이츄레스 스텦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마 나이가 맞았으면 좋은 일 생길뻔 했다.
그리고 그뒤에 육개월간 뒤를 받쳐 주었던 민혁이에서
사내 결혼이 탄생되었다.
군말 없이 꾸준히 받히니깐 감동 받은 예쁜 웨이츄레스가
대쉬를 했다.
나이 갖 스물을 넘어 대학다니며 일을 하던 앳된 아가씨가
필이 꽂혔다.
어느날 일하다가 이건 민혀이가 해라고 예기하는 데
어머 그런일까지! 본인도 모르게 튀어 나와
우리 모두 쓰러졌다.
사랑은 참 아름다운거다.
무심코 넘기는 그의 일이 자신의 아픔과 걱정으로 다가오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같다.
그 뒤에도 스텦들이 밀어주고 해서 영주권 있는 그 아가씨와
결혼해서 지금 잘 살고 있다.
지금은 민혁이도 식당일을 잘 배워 스시바의 베테랑이
되었다.
그 사이 늘 변함없이 이년동안 부루스가 제일 형으로서
듬직하게 자리를 지켜 주었다.
나중에 그런 사람들 없어 보니 정말 아쉽고 존재감이
그리웠다.
있을 때 고마워하고 잘해주어야하는 것같다.
그런 분들이 있어 식당이 생기 있게 잘 굴러 갔었다.
언젠가 만나면 소주 한잔 진하게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