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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이 3

박진양 2012. 6. 29. 12:24

 

 

 

 

 

하루 쉬는 날에는 틈나면 애 옆에 정신없이 잤던 것 같다.

그래도 식당 주방에만 서면 날라 다녔던 것 같다

언제 기회가 되면 지난 16 년 동안 9번인가 10번을 이사한

얘기가 나오 겠지만 렌트비 아낄려고 캐나다 해방촌(한국

교민 들 사이 그렇게 불렀음)에 그때 살고 있었다.

어느날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혜인이가 혼수 상태에 빠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다급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고 사장님께서 가보라 했지만 당시 영어가

서툰 아내가 걱정이 되었지만 경상도 사람 바쁜 식당

뻔히 아는데 집안 일 못 챙기지. 내가 간다고 뭐 병원에서

특별히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뒷 정리까지 마무리

하고 내심 다급했던 맘을 삼키고 치킨 테리야끼를

테이크 아웃 해서 병원에로 열두시가 다 되 갈 때 쯤

되서 도착했다.

캐나다의 의료 체계가 미국보다 훨씬 잘 된 무료인 것은

좋지만 공 짜가 급할 때는 사람 죽인다.

늘 나이롱 환자가 많아 웬만큼 급해도 응급실에서

네 다섯 시간은 기다리고 어떤 때는 열 시간 기다려

겨우 진료 받기도 하고 그래서 급할 때는 돈 들더라도

한국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갈 때 즈음 진료를 시작했는데 치료를 하는 건지

애를 잡는 건지 육개월 짜리 애에게 아무리 검사라지만

안 나오는 피를 드라큐리처럼 엄청 뽑아 대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네 다섯 통을 뽑고는 개인 병실로 옮겨 졌다.

병실은 생각보다 좋았다.

병명은 천식이었다.

공기 호흡기를 설치하고 개스약을 호흡을 통해 주입

하는데 그러다 깨어나서 싫다고 버둥대는 것을 누르고

있을려니 맘이 아팠다.

하지만 병실이 따뜻해서 인지 혜인이는 잠들고 창문 너머

눈이 내리는 풍경이 그 상황인데 아늑하게 느껴 졌다.

혜인이가 안 좋게 된다는 생각은 아예 안들았고

그때쯤 테이크아읏 해간 치킨 테리야끼를 아내랑 나누어

먹었는데 내가 했지만 참 맛있았다. 물론 배는 고팠지.

그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소담거리며

데이트를 하듯 아늑한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오일 간 병원에 입원에 입원 해있다가 퇴원 했는데

그동안 퇴근해서 병실을 지키다 새벽이면 집에 가서 잠을

잤는데 정말 피곤하지 않는게 이것이 부모맘임가 싶었다.

첫 해에월 1200$하는아파트에 살다 주거비 아낄려

530$하는 아파트로 이사헸다.

돈 값 한다고 큰방 창문 틈새로 바람도 들어 오고

눈이 오면 눈도 들어 오고 해서 비닐를 사서 이중 창을

만들었으나 역부족.

창문 밑 나믓 바닥에는 곰팡이가 폈다.

천식이 왜 걸렸는지는 모르나 좋지 못한 주거 환경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 졌다.

천식은 별다른 약이없고 겨울에만 신경 쓰고 성인이 되면

없어 짐다고 했다.

개인 공기 호흡기를 사야 했늠 데 반은 정부에서 지출하고

나머지반 300$맘 내고 약값은 개인이 다 냈다.

캐나다에 약 값 비싸다.

퇴원후 집에서 공기호흡기를 통 해 약을 투여 할 때마다

발버둥 치다가 나중에 힘이 빠져 포기 할때는 더욱 맘이 아팠다. 하지만 아프니깐 더 애착이 가고 이상하게 애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피로가 풀렸다.

바쁜 식당 생활에 잠도 잘 못 자고 피곤 했을 텐데도

잘 살아야 겠다는 각오와 오기가 생겨났다.

달리 다른 방도도 없고 해서 하는 일에 더욱 열정을

다했고 그래서 인지 일은 빠른 시간에 많이 늘었다.

다행히 혜인이는 워낙 식성도 좋고 자기애가 강해서인지

별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식성많큼이나 호기심도 같이 자라 주면서

국민학교 1학년 학교에서 어느날 집에 왔을 때

"엄마! 나 여행많이 해야해! 사막에서 모래도 줒고싶고,

일본에서 기모노도 입고 싶어" 라던 얘기에 틈나는 여행

해볼려 했는 데 지금은 고등학교에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