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해외에서의 삶이 하루 하루가 절박하여 고향 생각이
나서인지 아니면 정체성에 대해 느껴서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이 어디 뉴스에 나온 다면 관심있게 보고
스포츠 경기라도 하면 열심히 응원 한다.
한국에서 이천 이년에 월드컵 축구 응원이 대단한것은
세계적 뉴스꺼리였지만 여기 교민 사회에서도
열광의 도가니였다.
지금도 노스욕에 있는 한식당에서 시청앞에서 찍은
응원하는 사진을 크게 액자에 넣어 걸려 있는 데
저 빨간색이 응원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애들도
다가가서 자세히 한 번 보고는 와! 그런다.
그때 한인 타운의 식당마다 큰 티브를 구입해서 시차 때문에 새벽이나 심야에도 아랑곳 없이 같이 모여
응원을 했다.
어떤 집에서는 경기가 이길때 마다 무료 맥주를 걸기도
하고 경기가 이기는 날마다 태극기를 달고 시내에
차를 몰고 클라숀을 대,한.미인.국. 박자에 맟춰 울리면
지나는 캐나디언들도 환호를 해 주었다.
그때 우리 집 두 애들과 집사람을 태우고 이탈리아를
이겼을 때 시내를 그렇게 나갔더니 지나던 차들도
환호하고 하니까 막내도 신나서 한번 더 해보라면서
보채고 한국이 무엇인지를 애들한테 심어주는
좋은 계기였던 것 같았다.
우리식당에서도 붉은 악마 티가 시즌 상품이라 한벌에
삼십불씩 하는 것을 열 여섯벌 같이 사서 입고 다니며
저녁에 식당옆 우리집에 모여 같이 응원을 했다.
밤마다 피자를 시키고 맥주 한잔하며 기다리다 새벽에
응원하고 이겨서 흥분이 되어 잠을 못자 그대로 출근
했어도 열심히 일을 했다.
나도 한국이 암만 홈 그라운드의 잇점이 있어도
사강까지 올라갈 줄을 몰랐다.
정말 대단하고 뿌듯했다.
내가 농담으로 한국이 아직도 안졌냐면서
피곤하고 피자값에 등이 휜다고 하면
아주 주한이가 열이 올라 또 이런다면서 성토를 했다.
말 잘못하면 맞을 분위기일정도로 응원의 열기는
뜨거웠고 우리가 한 뿌리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시간이었다.
그때 사진을 보면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벅차 오른다.
대! 한! 민!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