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는 예술은 접해지 못해 몰라도
버스투어로 보는 도시 풍경 자체가 그림이었다.
미술시간 봤던 건축물 그대로가 도시를 채우고 있다고나
할까.
될수있으면 식당을 하니깐 식당에서 요리를 많이 접해
볼려 했다.
음식만큼은 유럽 최고였다. 음식에 대한 백그란운드는 없어도
입에드어가면 느낄 수있는 본능이 맛이었다.
프랑스 요리가 유명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생활속에
요리가 스며들어 있었다.
영국은 식당 자체가 많이 없고 있어도 에게게! 싶었던 게 템즈강 주위 번화한
식당가에서도 느꼈다. 그에 비해 파리의
역앞에 갖은 음식점이 줄을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 자체가 뭔가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재료도 참 다양하게 취급했다.
옆 테이블 손님 한 분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다.
홍합을 와인을 찐것 한 냄비 후딱하고 족발을 양념한것을
가볍게 보내고 그 뒤로도 여러가지 요리를 혼자서
즐기고 있었다.
반쯤 열린 주방 사이로 여윈 듯 날씬한 요리사 움직임이
한식 요리사 못지 않게 빠르고 능숙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
예술이었다.
우리는 해물 모듬 같은 것을 커다란 쟁반 얼음위에 굴,
생 홍합, 새우, 가재등을 놓은 것을 오다했다.
홍합 같은 것도 생거로 먹는 게 신기했다.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
캐나다보다 비싸지만 유럽의 살인적 물가를 고려하면
합리적 가격이었다.
요리를 즐기니깐 식당이 발달하고 그래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
도시의 버스 정류소 사이사이에 간이 화장실이 있었다.
모든 건물이 유적이라 될 수 있으면 불편하더라도
손대지 않을려는 노력인 것 같다.
지금은 유로화로 통일 되었지만 그중에 프랑스 화폐가
제일 칼라펄 하고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낙천적 국민성이 투영 된다고나 할까.
또 한번은 시내의 일식점을 찾아 식사를 헸다.
주인이 라오스 출신이라 일하는 스텦도 그 쪽 계통이라
좀 싼티(?) 가 보였다. 웨이츄레스가 한국 출신의 아가씨라
여러가지를 싹싹하게 많이 얘기를 해 주었다.
파리에는 새로 식당을 셑엎 하기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힘들어 보였다.
어느 정도 자본력이 있어야 기존의 식딩을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천오백 정도되는 규모의 캐나다에서는 거리 커지않는 사이즈
인 것 같은데 테이블 수는 엄청 많았다.
그래서 창고는 말 할 것도 없고 화장실도 지하이고 주방도 지하에
위치해서 지하에서 밥을 하고 요리도
지하에서 해서 수직의 조그만 콘베어를 통해 요리를
전달했다.
대신 스시바에서 일본 처럼 야끼바를 설치해 야끼도리나 구이 종류는
스시바에서 처리 했다.
나도 그 즈음해서 지금 식당이 한계인 것을 짐작하고
다른 식당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기왕 캐나다까지 온 것
미국이나 유럽에도 살 수있지 않을 까 생각 했는데 파리 같으면 식당은 한번
해볼만 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인종적 차별을 덜 느꼈고 자유로왔다.
아내에게 얘기를 한번 했더니 애들 때문에 이민 왔는데
이제 애들이 안정되어 자리잡아나가는 데 이곳에서
나중에 돈을 번다해도 그동안 몇년은 애들의 날이 없는 것아니냐면서
말렸다.
그리고 런던에 생각지않았던 흑인이 많았는데 파리는
더욱 많고 인종이 상당히 다양한데 놀랐다.
아마 오랜 식민지의 지배국가의 여운과 정치적 망명을 인정하고
다른 문화에도 오픈적인 프랑스의 컨셉과
지구촌 새대를 앞 서가는 탓인가 싶었다.
샹젤리제 거리 니 뭐 해도 말 하니깐 그런가 보다 싶었다.
영화 퐁네프의 다리를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실제의 다리는 지극히 평범했다.
문화와 명물도 스토리에 의해 새로 태어나는 모양이다.
그래도 자유롭고 개성이 있고 사람이 숨쉰다는 느낌이
강한 아름다운 도시 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