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그 근처에 있는 커뮤너티 센터에서 일식 강의를
해보라고 섭외가 들어 왔다.
캐나다에서 커뮤너티 센터가 발달 해있는데 커뮤너티센터
안에 농구대 배구대등 기본 체육시설 수영장 까지 갖추고
영어 불어 다른 외귝어 와 다양한 문화교육도 염가에
제공해서 청소년및 성인의 평생 교육까지 제공하고 있다.
당시에 일식이 붐을 일고 있을때라 그 커뮤너티센터에서
특별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두시간 씩 구주간 동안
한다고 했다.
이 기회에 식당도 홍보할 수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수락했다. 강의가 별거냐고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했나. 무식함으로 밀어 붙였는데 할 수록 장난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열 일곱명 정도 되고 삼분의 일이 중국계이고
나머지는 캐너디언 주부와 아저씨들이었다.
다행히 한국사람은 없었다.
음식에 대해 실습도 했지만 각자 일식에 대한 책 힌권씩은
갖고 있어 다양한 질문을 해와서 매주 열 시긴은 공부하고
준비해야했다. 강의료는 시간당 사십불을 받아도
시중에 있는 모든 책을 사보느라고 반이상을 썼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친구 미스터 오의 부인이 일본사람
이고 일본에 있을 때 삼 년간 요리학원을 경영했다고
이것 저것 나도 많이 물어 보고 공부를 했다.
오 육주 지나니깐 아이템이 고갈되서 어떤 날은
밥하는 것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강의 한 적이 있었늠데
전기밥솥 냄비 산에 디닌는 코펱 까지 가져와서
등산 했을때 선배님들의 밥한는 요령에 대한 뻥도 섞어
가며 했더니 대개 좋아했다.
어떤 날에 혜진이 엄마가 혜진이 혜인이 까지 데리고
와서 교실밖에 보러 온 적이 있었는데 마침 내가
무슨 뻥을 깠는지 학생들이 하도 웃어대서 운동하던
학생들까지 무슨 일인가 싶어 창너머 보고 있었다.
그래도 한 주 한주 지나는 것을 준비하느라 힘겹게
보냈다.
그리고 커뮤너티 센타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청소년들이
단골 손님으로 확보 되었고 지금도 스카보로의
슈퍼에서 쇼핑할 때면 그때 그분들이 인사를 해주곤 한다.
어쨋든 이리저리 몸부림을 쳐서인지 식당이 바빠지고
기다리는 선님들이 많아 번호표를 만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