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박한 캐나다와 발전하는 한국과의 문화적 현실적인 차이

박진양 2016. 6. 21. 08:59

얼마전 현지 일간지에 난 내용인데 캐나다 중년 남자가 한국 며느리를 맞이하고 한국에서 사돈 어른이 방문하겠다고 통보를 했다 한다.

한국에서 대접을 잘 받고 해서 잘 해주고 싶은데

한 달 정도를 집에서 있겠다고 해서 어땋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상담을 한 얘기였다.

그때 카운셀러 얘기가 아마 최선은 호텔에서 숙박하는 것이었던 같고 같이 있다면 한 달간

생활하는데 드는 식비며 생활비를 분담해야 하고

그 내용을 정확하게 통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 캐나다 현지 설문조사에서 한달에 백불만

오버해서 지출해도 가계가 휘청하는 사람이 봉급 생활자의    사십퍼센트가 해당된다고 한다.

한국돈 십만원 남짓한 돈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빈틈없는 이 곳 생활의 현주소를 설명하는 것 같다.

그래서 보통 한국에서 오는 방문객은 집있고 차있으면 부자라 상각하고 또 그조차 없어도

당연히 손님 접대하는 것을 바랄수도 있는 것 같다.

그로 인해 생기는 말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욱 빈갑다'고 얘기를 한다.

그만큼 빡빡한 이민 생활에 손님 치루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과 이 곳 생활의 정서가 차이가 있어

잘 지내기는 쉽지 않다.

 최근에 지인의 경우 친구 딸을 맡겼는데 돈을 준다 해도 사양하고 첫달치 방세로 계약금을 선물로 주면서 다른집에 있게 하고 문제가 있으면

도와 주곤 하면서 근 일년을 보내면서 한국 돌아가자 겨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지인의 경우는 조카딸을 집에 있게 했다가  한국에 계신 큰 형님과 의절을 했다고 한다.

그 분의 경우는 한국에서 대힉교 다니는 딸을 보냈는데 캐나다에 있는 작은 아버지가 당연히

돌봐야 된다는 경우였다.

한국에서 웬만큼 사신다고 자랑은 하시는 데 생활비 지원은 전무하고 방이 모자라 집을 개조해서 쪽 방에다 지인의 딸을 재우고 조카 딸은

큰 방에다 재우는 등 손님 치례를 이년 가까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 조카딸이 한 얘기가 반찬이 없어

밥 먹겠다고 투정하는 등 그 결정적인 것은 조카딸이 새벽에 들어오고 해서 걱정이 되서

뭐라 했는데 조카딸이 뭐라 밀했는지 형님으ㅣ로

호통을 당했다고 한다.

그 중간에 그 공짜로 있는 조카딸은 검소한 캐나다

생활에서 보기 힘든 메이커 옷을 옷장에 채우면서

옷 하나 선믈 안하는 등 뭐 감정적인 앙금과 거리감이 작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에 부모님께 자기 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말한 것에  제일 오해가 생기고 맘이 상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지인은 분이 안 풀려 '씩씩' 거리며

맥주잔을 원샷 해버리신다.

또 다른 지인 한분은 잘 지는 경우인데 고등학교  조카딸로 미리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그 아줌마는 언니와 별도로 조카딸한테 이모하고

엄마 원수 안되게 하고 싶으면 캐나다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좋은일 아니면 절대 하지말라고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그 분 경우에는 한국에서 언니로 부터 생활비 육개월치를 선불로 빋았다고 한다.

서로 개념이 서면 좋은 관계로 도움을 주면서도 있는 것 같다.

나 경우에도 십 년전에 선배님께서 하숙비를 주겠다면서 우리집에 있게 했는데,

 내가 공항 마중과 이사를 하면 도와주고 가끔씩

찾아가 밥도 사줄수는 있지만 있는 것은 반대를 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본인 생각이 있어

한 집에 오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육개월간 몇 번 이사를 하고는 지치고 했을때 본인이 원해서 우리집에 았게 했는데 니머지 육개월간 너무 잘 있었다고 얼마전에 한국

갔을 때 결혼한 신랑꺼지 나와서 대접을 잘 받았다.

그런데  최근 이 년 사이에 와이프 친구 딸을 있게 했다.

한국에서 추억도 있고 해서 형편 안 좋은 그 분 사정을 고려해 그냥 있게 했다.

그런데 향편이 안좋아서인지 거의 집에만 지내는 것이 안타까워 없는 시간 쪼개서 있는 삼개월간

틈틈히 여행도 하고 외식비도 없잖아 많이 썼다.

나도 우리 애들 용돈도 빠듯해서 변변히 못주면서

미국 여행을 여행사 통해 보내주고 용돈 으로 백불

가량 주었다.

그러고 한국을 돌아갔는데 돌아가서 고맙다는 말이나 잘 도착했다는 말이 없어 걱정이 되서

전화를 했더니 그 엄마가 잘 도착했다고 했다.

그러고 난 뒤에 두어 번 왔는데 식당 첨 오픈해서

바쁜 와증에 공항 마중이며 여러 일을 치루어도

고맙다는 말 대신에 서로 감정만 상하고

 밀았다.

말이 없는 것은 성격 탓이라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한국에서 적응이 힘든 대학 생활 보다 여기가 만만하고 좋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영주권 있는 우리도 살기가 힘들어 충고를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한 뒤로 원수아닌 원수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도 한번 열받아 카톡을 주고 받고 난 뒤에 어느 정도 오해가 플렸지만 아직도 있는

그 딸을 못 만나고 있다.

본인이 안보겠다고 비밀로 들어오고 식당에서

마주쳐도 안면 무시했다고 한다.

물론최근에 엄마를 통한  본인 설명으론 당황한

나머지 한 행동이라는 데 맘이 짠해져서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지만 또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할 줄

몰라 겁이 나서 못하고 있다.

대개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캐나다 문화와

한국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꼭 본인이 목적하는

바가 아니면 인정치 않는 문화 차이가 조금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바를 도울수 없으면 고작해야 식사하고 충고 정도 할 것 같은 생색은

그 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본인이 직접 연락을 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설수가

없고 그냥 앞으로 오게 될 한국 손님에 손님 트라우마가 생겨 버렸다.

안타갑지만 내가 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이 오십에 사람이 싫어질 때가 없었으면

그 또한 잘 못살은거라고 얘기를 하는 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