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당은 크기에 비해 직원 분들이 많다.
피크 타임인 저녁시간 전선에 집중 한다.
바쁠때는 말 그대로 전쟁터이다.
총알대신 밥알이 날라다니고, 배고파 기다리는 지친 눈동자가 대기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 증오(?)로 가득할때도 있다
웨이츄레스 한분은 계속 걸려오는 전화 오더 받기에 급급하고
한사람은 음식 포장하기에 정신없고,
또 한사람은 홀 서빙만으로 혼이 나간다.
물론 스시바에도 세사람이 해도 버거운데,
문제는 하루 종일 바쁜것이 아니고,
유태인 행사도 많아 언제 바쁜지 알수가
없을 때도 많다.
그래서 피크 타임인 저녁 시간대에
파트 타임으로 직원분들과 주로 함께 하는데
마지막 보이스카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급한 불을 꺼주는 제이가 이번에
떠나간다.
지난 이년간 궂은 일을 마다 않고 해서
언제부터인가 직원 모두의 사랑과 눈에 보이지 않는 존경을 유머스런 농담으로
받았던 제이가 다니던 회사를 따라
다른 도시로 가는 바람에 서로들 아쉬운 이별을 했다.
제이는 유학생으로 캐나다에 와서 항공 정비
관련 대학을 나와서 피어슨 공항에서 항공기 정비일을 하면서 저녁 시간에는 우리 식당에 일을 했다.
그 회사에 근무하며 영주권도 따고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로서 낮에 일하는 것으로도
피곤할터인데 저녁에 와서도 우리 식당 에너자이저이다.
학교 다닐 때에 식당에서 알바를 해서
주방 스시바 모두 익숙한 올 라운드 플레리어로서 디쉬 와셔까지 형 된 나이에서
까칠함없이 하니 모두들 존경을 하고 많이
따른 정신적인 지주였다.
저런 친구는 어디에 가도 잘 살고
주위를 밝게 해주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그런 인연을 맞이한 나자신이 행운아 였던 것 같다.
관두기 얼마전 추운날 한가 하다며
주방 캐노피를 닦는 모습을 찍어 보았다.
나름대로 꿈을 찾아 먼 이국땅에 와서
열심히 살아가는 제이의 모습에 다들 제이의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몇가지 유행어를 만들어 내어 모두들 따라 했다.
일단 모든 일본어나 영어로 된 오더를 한국말로 복창했다.
소프트쉘크랲은 게 튀김, 후토마끼는 큰 김밥등 갑자스런 낯선 표현에 바쁠때는 듣는
사람도 헷갈려 실수 할때도 있지만 그조차
모두들 웃어 넘겼다.
그리고 스시바에 필요한 튀김 새우등을
재촉하면 웃으며 '예' '갑니다' 라고 일관한다.
모두들 시작도 안한것을 알지만 그래도 웃었다.
얼마전에는 스시바 미스터 정을 '정실장--!'
하면서 나타나서 모두다 '정실장 --!' 하면서
따라 웃었다.
별 웃길일도 아니지만 모두들 감염되었는지
엄청 웃었다.
그 사람만이 가질수있는 내공에서 나오는
오로라가 있었던 것같다.
그래서 참 모두 섭섭해 하였고,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또 모두에게 힘든 현실이었다.
나 역시 지난 한달이 힘들었고,
이즈음 하니 미련도 보내고 새 스텦과 적응해서 손발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잘 살아가고 주위 사람에게
엔돌핀을 선사할 것같은 제이에게
동안 함께 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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