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지난 오십년동안 여러곳에 살아보고 여행도 해 봤지만 포항만큼 다양하게 삶을 여러가지면에서 누리게
하는 곳은 흔치 않은 것같다.
술집도 많았고 휘청거리는 밤 문화도 웬만한 곳에 눌리지않았고 레저 문화를 위한 자연도 포항을 둘러싸고
잘 보존되어 있고 바로 천년의 수도 경주도 멀지 않는 곳에
있다.
참 여러가지 면에서 골고루 잘 갖추어졌다고나 할까.
여기 캐나다에 와서 살다보니 다양한 나라와 민족 출신이
많다.
그중에 다른 나라를 볼때 제일 중요한 요소가 역시 뭐니해도 마니인 것은 감출수가 없다.
돈이 있어야 문화적 수준도 유지되고 삶의 여유, 그리고
그나마 상식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는 것같다.
제철 산업이 공해산업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내 있을 때만 해도 설비투자를 많이 해서 친 환경적으로 거듭났고,
그런 현재의 포항을 만들어 낸것은 포항제철없이 생각이
안되고 얼마전 돌아가신 박회장님의 공로와 선배님으로서의 노고는 인정해주어야 할 것같다.
이민와서 포철에 아부할 필요는 없지만 해외에서 살다가
보니 그런 생각이 세삼스럽게 든다.
그리고 포항에 갖추어진 천혜의 자연이라면 바다가 있었다.
최 백호의 노래에도 있는 영일만이 있고 북쪽으로 남쪽으로
끝없이 연결된 동해 바다의 해안선을 따라 어디에 든지
차를 세워 바다밑으로 들어가면 또다른 세계가 펼쳐져있다.
서울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즐길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포항은 바닷가라 지극히 소박한 가격으로 즐길수
있다.
그나마 포항제철안의 동호회를 통하면 아주 염가에 즐길수 있었다.
포항제철은 돈 버는 것외에 또다른 기업 문화를 창출했다면 각 개인의 다양한 취미나 문화적 활동을
구체적으로 많이 지원해주는 것같다.
여러가지 동호회가 많았다.
고문화 연구회, 테니스협회, 산악회 등 웬많한 사람은
한 두가지이상의 또다른 자기세계를 추구하는 것같았다.
지금 보면 그게 사람사는 것 같다.
평소에 회사에 불만있어도 나가라고 하면 쉽게 나가지않는 분위기랄까, 잃는 것이 있는 느낌이랄까.
잃을것이 없는 사람이 제일 무습다고..
왜 이래 회사칭찬을 많이 하냐고 하면 나도 많은 덕을
봤기 때문이다.
스쿠버 다이빙은 장비도 그렇고 당시로는 쉽게 개인적으로 시작하긴 무리가 되었다.
품질관리부에 근무하는 성식이형이 회장이 된 파도팀에서
교육도 받고 활동도 했는 데 고가의 장비는 공동으로 되어
있고 특히 모 이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지원 된 것도 있고 해서
별 무리없이 접근했었다.
그 때 처음 이론 교육받을 때 교육동기 연수원장님이랑
같이 받았고 나중엔 광양제철소장님으로 부임해서 가셨다.
윗 분들은 편안히 즐길만한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절친 차 봉준씨를 소개해서 같이 받았다.
그 때 내연산 보경사 입구에 야외 수영장이 있었는 데
밤에 불도 없이 교육받으니 내가 해군 유디티가 된 느낌이었다.
한 밤에 어둠 속에서 교육을 받아서인지 실제 바다에
들어갈때는 더욱 겁없이 즐길수있었다.
교육 끝내고 밤 열두시인가 오토바이를 타고 포항으로
오는 여름밤의 스쳐가는 상쾌한 공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퇴근후 환호동에서 교육도 밨았고 첨 정식으로
입수하고 라이선스도 지급되는 오픈워터는포항제철소 옆 송도 앞바다에서 치루어졌다.
그 때 산에 다닌 폐활량 덕분에 스쿠버 장비를 차고
들어간 선배님 옆으로 스킨 수영으로 십미터 넘는 깊이를
단숨에 치고 들어가서 놀래기도 했고 산악인 출신의
경계심도 주었다.
그런데 정말 바다는 산과 달리 추락의 공포도 없고
들어가면 먹을거리가 있어 좋았다.
아침 일찍 안일어나고 식사당번도 필요없고 느긋하게
일어나서 우아하게 수영한다는 스쿠버에 대해 실례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암벽등반에 대해 비교해서이다.
개인적으로.
스쿠버다이빙도 실제로 많이 공부해야했다.
장비를 쓰고 목숨이 달렸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믿음도
중요하고.
그리고 바닷속의 풍경을 잠시라도 한번 보면 특이한
색감과 분위기에 빠져 들고 만다.
계절따라 다른 물 빛과 가끔식 보이는 열대어의 무늬를
보면 참 아름답다는 말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칼칼한 바닷 사나이와의 조우도 나쁘지않았다.
성식이형 후배가 송도에서 해병대 수색대 출신으로
군부대에서 불하받은 보트로 대여업을 했는데 송도에서
구룡포의 대보 앞바다까지 이십분이면 날라갔다.
구룡포 앞바다에가면 돌문어가 많았다.
돌문어 부터 먼저 잡아 삶아먹으면 맛도 좋았고 배도 든든했다.
그리고 물속에 들어가면 온갖 물고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는 하다.
아름다운 물고기가 다 횟감으로 보여 피슁으로만 즐겼으니.
어느날 울진 원자력 발전소 준공전 바다밑에 들어가
숨을 곳 없는 모래로 된 곳에서 물고기를 쫓다보니 도망가는 물고기에서 땀방울이 떨어지고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그래서 좀 자재를 하고 관망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원래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보면 수중사진으로 바꾸어진다.
그 해 여름인가 혼자서 공기통을 열 몇개싣고는 강릉 경포
대부터 울진 앞바다와 망상 해수욕장, 영덕 앞바다까지 웬만한 다이빙 포인트는 다 들어가봤다.
원래 다이빙은 페어로 했어야 했고 안전 수칙상 안된다고
들었고 지금 생각해도 위험한 행동이었다.
울진 앞바다인가 수심 이십미터 정도에서 바위 계곡사이에
소용돌이가 있어 핀부터 살짝 넣어 봤더니 쭉 빨려드는 것을
느끼고 겨우 해엄쳐나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때 속박된 단체생활에서 나온 자유로움을
느껴 보았다.
등반은 중력을 바탕으로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의 몸부림이고
스킨 스쿠버 다이빙은 중력이 부력으로 상쇄되어 만난 자리여서인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물에 대한 친밀감인지 몰라도 참 물이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