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캐나다의 토론토와
뱅쿠버는 당시에 1999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서 중국 인구가 특히 홍콩 자본이 많이
유입되었다. 토론토에만 중국 커뮤너티 인구가
팔십만 실제 통계에 계산 안되는 것 까지 하면
백만을 넘어선다고 했다. 대만이나 중국본토말고 홍콩 쪽에서 온 사람들은 일식을
아주 즐겨 먹었다.그 사람들은 외식을 주로 하기때문에 필이꽂이면 일 주일에 몇 번도 일식당을 찾기도 하는데 토론토의 스카보로 지역에 많이 거주했다. 그리고 토론토는 다문화 지역인데
그중에 같은 커뮤너티 즉 인종적으로 동일하면
입소문도 빨랐다. 그러다 보니 중국 커뮤너티
쪽의 식당 자리를 많이 알아보게 되었다.
주로 퇴근후 다니다 보니 밤에 알아보기에 좋은 점도 있었다. 캐나다는 대개 십년주기로
경기 사이클이 반복되는데 당시는 바닥이었다.
문 닫은 업소도 많아 잘 잡으면 좋은 시설의
식당도 말 잘하면 그냥 렌트해서 징사하면
되기도 했다. 물론 위험부담은 커지만.
오직하면 그집도 문 닫고 나갔겠냐고.. 하지만 정확한 시장 분석과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종종 성공하기도 한다.
밤에 다니다 보면 모든 영업소는 퇴그하고나도
불을 켜 놓는데 빈 가게는 꺼져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밤에는 교통채증이 없어 여기저기 짦은
시간에 많이 알아볼 수 있었다.
문 닫은 업소를 렌트 할때 첫번째 마지막 달
렌트빈는 디파짓 해야하지만 경우에 따라
몇 달치 렌트비를 디스카운트 해주기도 했다.
돈도 별로 없는 사람이 봉이 김 선달도 아니고
빡빡한 예산에 막연하기도 했지만 었쨋든
열심히 몇 달간 알아보았다.
어떤 날엔 새벽 네시까지 알아보고 조금 자고
출근하기도 하고 괞찬은 가게는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쉬는 날 부동산 에이전트를
대동해 딜을 해 보기도 했다.
캐나다에서는 팔고 렌트를 주는 사람이 경비를
다 부담함다.
그래서 제 일 순위는 문 닫은 중국식당이나
문을 닫기 직전 비즈니스가 맥없이 보이는 중국 식당이었다.
무엇보다 중국식당은 프리미엄이 비교적 났았고 주방 공간도 크게 잡아 운영하고
설비도 좋았다.
그러다 최종 두군데 가 물색되었다.
첫번째는 yong& steels에 있는 3000sf가
넘는 큰 식당이었다.
지금은 장소가 너무 좋아져 그 근처에 대박난
일시당이 몇개나 있지만 당시는 바닥인 경기의
마지막 자락이었다. 이.삼십만$ 이상 투자했는지 주방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졌고
앞으로 장래성이 있어 보였다.
문닫은 식당이라 아무때나 들어가면 되고
프리미엄도 없었다. 좋은 기회였지만 혜진이
엄마랑 상의 해보니 렌트비가 비싸고 규모가
커서 손익 분기점에 다 다르기 전에 가라앉을 수 있다고 무모하다고 말렸다.
두번째는 렌트비가 싼 가게 였다.
카라비얀 음식과 음료수를 주로 파는 가게였다. 3000sf로 넓고 그전에 정육점을
해서 인지 각종 쿨러 시설 지하의 보관 창고도 좋았다. 바다를 배경으로한 실내장식과
수조까지 있어서 일식점으로 개조 하기가 너무
좋았다. 주택지역에 있어 알려 지기까지가 시간이 걸리겠지만 렌트비가 1500$ 로 파격적
으로 쌌다. 부동삼 에이전트는 전형적인
캐너디언 신사로 보였는데 두달치 렌트비를
면제 하는 조건으로 오퍼를 넣었지만 우리가
무리한 조건이었고 개인 택스 보고등 서류적
으로 갖추길 원하는 캐너디언 주류 시장하고
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케나다에서 뭘 할지 몰라도 인 캐이스로 세금은 조금씩 보고 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일주일뒤에 연락이 왔는데 흥정의
여지없이 거절 당했다.
나중에 보니 정육점으로 했다가 재활 치료소
로 바뀐 것을 보았는데 kenedy 선상 finch 좀
위에 위치 했는데 식당으로 해도 좋았을 것갘다. 그때는 무엇보다 시점이 좋았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