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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천팔년도의 이사

박진양 2012. 11. 23. 13:59

이천 팔년 육월초인가 그 즈음해서 이사를 했다.

캐나다의 유월은 보석과 같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겨울이 오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봄이 더디게 오고

봄인지 겨울의 미련인지 구분이 안가는 사월에도 이따금

눈이 내리기도 하는 그리고 오월이 되면 비로소 봄 비슷한

분위기기가 가끔은 날씨 좀 좋다 싶으면 아가씨들이

훌훌 벗어버리고 유월이 되면 모든 캐너디언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여름을 느끼게 한다.

여기 초여름은 그렇게 습하지도 않고 좀 습하다 싶으면 간간히 소나기도 뿌려주면 잔디가 하룻밤 사이에도 부쩍

자라 싱그러운 풀냄새가 생기를 주고, 파릇한 새 잎사귀가

크게 자라 바람따라 출렁이는 풍요를 느끼게 하는 보석과

같은 아름다운 날씨에 캐너디언들은 반쯤은 취한듯해 보인다.

겨울이 긴 만큼. 봄 마저 존재감을 채 못 느끼고, 그리고

문득 어느새 다가와버린 여름이 너무나 좋은 그런 시간이

해마다 캐나다에 살며 유월이 오면 대하는 느낌이다.

그즈음인가 콘도를 팔고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장사 안되 집팔아서 버티고 세들어 사는 것이 별로 재미도 없을것 같은데 그래도 그 때를 떠올리면

그 때의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았던 것같다.

돈밀과 스틸에 위치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노스욕이

되고 리치몬드가 되는 언덕위 길가에 위치해서 버스가

힘껏 숨을 껄떡대고 지나가면 진동이 침대를 흔들어도

좋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사람 사는 것이 꼭 물질의 풍요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때는 희망을 부여잡고 지금보다 좀더 젊어서일수도 있겠다.

그 전에 사촌동생 미혜네가 같은 타운 하우스를 살아

놀러 갔을 때는 우리는 리치몬드에 있는 주택에 살아서인지 천오육백 스퀘어피트되는 타운하우스가

작게 보이고 서글퍼 보였는 데, 집 세얻기위해 아파트도

다녀보고 나서는 같은 그 집이 대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길가 바로옆에 위치해서 좀 시끄러워도 애들이

버스타고 내려 집에 오면 쉽고 안전할 것같아 일부러

그 집을 택했다.

그리고 그 집에 신청하고 그 지난해 소득신고서등 서류를

내고는 한 일주일은 가슴졸인 시간도 가지면서 야트막한

애착마저 있어 열심히 이삿짐도 쌋던 것 같다.

캐나다에서 이사 한번 하면 할때마다 여자들은

삼년을 늙는다고 하는 데 그런 어려운 시간을 함께 보낸

아내를 생각하면 사랑보다 진한 정과 동지애가 먼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집에 가게된 또다른 이유는 큰 애 혜진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이 힘든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중 큰 이유가 되었던 것은 그 학교가 토론토에서

유명한 예술학교라 한국에서 갓 이민 온 분들까지

관심이 많았고 그 즈음부터는 한국애들도 또래에

제법 있었는 데 한국에서 온 애들과 가끔은 문제가 있었다.

아무래도 사춘기 정도되어서는 여기에서 자라다가도

본인들의 문화적 인종적 백그라운드에 관심도 갖게 되고

빨리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정서를 채 이해못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지는 것같다.

아마 그 때쯤은 혜진이가 힘들어 하고 음악을하기보다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어 그 전에 응시했던

세인트 로버트 스쿨로 다시 전학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 학교에 가기위해서는 주소지가 그 쪽에 필요

한 것도 이유가 되었다.

원래 그 학교는 미국 명문대에 진학을 위한 아비코스가 유명하다.

그 코스는 미국 대학에서도 인정하는 것을 보면 영재학교에 비교되는 것같다.

그런데 혜진이는 이미 일년을 지났기 때문에 그 과정에

들어갈수는 없고 일반 과정을 다녔는 데 너무 싱거워서인지 흥미를 못느껴 다시 일 년뒤에 다녔던

예술학교에 돌아가기를 원해 또 이사를 나중에 일년뒤 쯤에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혜진이 엄마 정성도 대단한 것 같다.

물론 그 예술학교에 다시 돌아가는 것도 학교에 다시

오디션도 봐야 하는 등 쉽지않았는 데 학교에서 혜진이

바이올린 실력을 많이 인정하고 선생님들이 원해서

쉽게 갈수는 있었다.

문제는 이사가 힘들었다.

그리고 그 타운하우스에 사는 그 일년 남짓한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 데 식당의 빡빡한 현실로

너무나 절박한 시간을 보내서인 것도 같다.

매상이 오르기는 해도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채 넘지 못해

잠못들어 할때 유리창을 흔드는 차소리라도 나면 잠을

설쳐야 했다.

그래서 이 땅에 살았던 칠천오백만년전 주라기 시대의

공룡발자국 소리와 비교하면서 그 긴 시간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며 불면증을

이겨 내었던 것같다.

그래도 그집에서 있을 때 혜진이엄마와 저녁 열두시가 다되어 산책도 하고 근처 펍에서 이웃분들과 맥주도

한잔하고 또 애들한테 그 집에 있는 시간에 특별히 책을

많이 읽어 주었던 것 같다.

그.때쯤 포항제철에 같이 다녔던 친구에게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를 이년 정도 선물로 구독을 받게되었는 데 맘에 위로가 참 많이 되었다.

정말 이름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가

내가 힘들어 보니 와 닿았고 공감을 많이 가졌다.

베토벤이 십 몇 년간 밤새 작곡하던 버릇으로 세든집에서 쫓겨나 수십번 이사를 해야 했고, 월광소나타도 이사하다 마차에서 떨어져

무심코 본 달 빛에 필이 꽂혀 밤새 작곡했다는 것도 그 책에서 처음 알았다.

브람스가 스승 멘델스존의 아내를 평생 사랑하고 멘델스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위해 모든 생활비를 주면서도 한번도 만니지않고 편지만

간간히 왕래하고도 인스프레이션을 얻었다는 얘기등

참 그 당시 그 책에서 참 인생의 많은 것을 느끼게 했기에 긴 어려운 시간을 지날 수있게 했다.

그리고 콘도를 팔고 딱 하나 나를 위해 사고 싶었던것이

가라오께 머신니었다.

커머셜로 하면 이천불정도 하는 데 그 것하나 산것으로

집 하나 산 것처럼 부자된 것 같았다.

그 것때문에 서드베리의 서니네와 갈 사장네랑 밤새

노래부르다 옆집에서 항의 받은 적도 있었고

혜진이가 학교 친구들을 너무 많이 데리고 와서 즐기는

바람에 지금은 식당 지하에 보관하고 있지만 그 또한

지금 보면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