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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민 역사 내 친구 강 기훈

박진양 2012. 11. 7. 05:01

 

 

 

엊그제 캐나다에서 아주 친한 친구 강 기훈이를 만났다.

나랑은 동갑인데 그 친구는 칠십년도에 이민을 와서

십육년전에 처음 만났을 때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는데

요즘은 거의 한국사람이상으로 한다.

가끔식 만나도 늘 자주 만나던 것 같은 그런 고향친구같은

느낌의 친구이다.

골프도 기훈이는 열한살때부터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해서인지 아주 잘하고 샷도 호쾌해서 같이 치러 가면

즐겁다.

브라질에서 열세살에 캐나다로 이민온 우리보다 세살

많은 종화형이랑 셋이서 한때 골프도 치고 저녁에는

펍에서 생맥주도 마시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는데 요 근래 서로 뜸하게 만나곤 한다.

그래도 맘만은 늘 바로 옆에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오랜 정이 바탕에 깔린 김치같은 친구이다.

언젠가 한번은 셋이서 노래방에 갔는데 나는 나훈아 노래를 하고 노래 잘하는 종화형은 발라드 계통을 부르고

한국노래는 거의 모르는 기훈이는 우리 어렸을적 불렀던

올드 팝송을 간드리지게 불렀다.

우리에게 어렸을적 가요에 추억이 있듯이 이 곳에서

자란 기훈이도 팝송의 칠공 팔공이 있어 같이 공감대를

가졌다.

그리고 이민와서 살다 보면 가끔식은 영어도 부족하고

이나라의 정서나 지식이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병원을 간다던지 애들 진학문제라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기훈이네에 가서 상의하면 머리가 시원해진다.

기훈이 큰 딸이 혜진이 보다 두 살위의 학교 선배인데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냈는 데 이 번에 대학을 졸업하고

군인이 되었다.

맥매스터 대학의 행정학과를 졸업했는 데 우리나라의

알오티시 비슷한 그런 계통으로 대학에서 장헉금과

생활비도 받으면서 헉교를 마치고 이번에 장교로 임관해서 군에 근무하는 데 연봉이 오만오천 정도되는 것

같아 솔직히 부러웠다.

큰 딸 이름이 보윤인데 아빠 닮아서인지 참 활달하면서

쿨하다.

여기에서 자란 기훈이같은 일점오세들을 보면 영어에

문제도 없고 해서 쉽게 살아가는 것같다.

그런데 변호사나 의사등의 전문쟙을 가진 친구가 아니면

삶의 기복이 심한 것 같다.

비즈니스는 꼭 영어 잘하고 많이 안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훈이는 재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아 여러가지

사업도 동안 많이 했는데 사업 운이 없어서인지

크게 재미는 못 봐서

동갑내기 보윤이 엄마가 팔을 걷어부쳐 한 몫하고 있다.

기훈이 사업하면 옆에서 내조하더니 몇 년전인가

간병인 코스를 공부하나 싶더니 요즘엔 베테랑 간병인이

되어 피곤하긴해도 생활의 한 부분을 제대로 지탱하는 것.

 

같다.

재주많은 기훈이는 늘 뭐가 끈기가 없어서인지 뭔가

부족한 이프로의 이 나라 사람처럼,.

그래도 가족은 절말 잘 챙긴다.

어릴때 부터 여기 학교를 다녀서인지 이나라의 여러가지

프로그램도 잘 이용하고 애들이 학교에서 행사가 있거나

하면 잘 참석해서 가정적인 아빠의 표준을 보여준다.

요 몇 년 아니 십년이상을 기훈이는 비즈니스가 썩 좋지는

않아 그렇게

허덕이는 듯해도 대마 불패인지 나와바리의 저력인지

사는 데는 뱔 무리 없고

이 나라 캐너디언처럼 가정적으로 해줄 것 다 하면서

애들 셋 다 잘 키우는 것같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가족을 위해 할 것은 다하는 것같다.

여기 이민와서도 한국 가정에서는 각종 과외도 많이 시켜서

은근한 부담인데 기훈이네는 돈 드는 과외는 아니더라도

여기 학교를 다녀서인지 각종 학교 프로그램을 잘 알고

이용도 돈 알고도 잘 한다.

그 것이 나와바리의 힘인지.

십육년전에 혜진이 얼굴을 할쿼서 서로 알게된 그 집 아들도 이번에 킹스턴에 있는퀸스대학에 입학했다.

그 친구도 혜진이랑 같은 주말 한국학교에 다녔는데

그래도 늘 서툰 한국말이 중학교 쯤인가 한국 방송 특히

개그야 프로를 보며 한국말이 트였던 것같다.

그 때 본 한국 개그를 학교에 가서 캐너디언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아무도 안 웃었다고 해서 우리가 웃었다.

노래는 가사를 몰라도 되어도 개그는 말과 정서를 모르면

안되는 것같았다.

그즈음 한국의 개그맨 컬투가 와서 토론토에 공연을

했는 데 웃지를 않아서 진 땀을 내고 갔다는 데 여기

이민 생활에 벌써 정서가 따라가지 못해 웃지를 못했던 것

같다.

기훈이만큼 쟙이 다양한 친구도 드문데 얼마전 까지만 해도 홈데포에서 디스플레이 메니저를 했었다.

그런 쟙이 있는 지 기훈이를 통해 알았다.

그 전에는 달러샵을 했었고 가게도 했고 자동차 딜러 출신

이었고 다양한 경력이 이루 말할수 없어 대화를 하다보면

얘기거리가 풍성하다.

젊었을 적 캐나다출신 배우인 짐케리의 고향 뉴마켓에 살며 직장다니다 저녁에는 펍 스타일의 술집을

운영했는 데 어느날 디쉬와셔도 웨이츄레스도 결근했다고

했다.

그 날따라 너무 바빠서 빠에서 술마시고 있는 캐너디언 친구를 일당 줘서 디쉬와셔 시키고 술을 나를 시간도 없고

해서 생맥주 따르는 꼭지에 입을 벌려 맘껏 먹고 일 이불을

받았더니 캐너디언 손님들이 무슨 큰 이벤트인줄 알고

축제처럼 대박이 났다고 했다.

술 마시다 보면 나중에 꼭 듣는 레퍼토리의 하나이다.

그리스인 죠르바처럼 낙천적인 모습으로 늘 낙천바이러스가 감염되는 것 같다.

요즘에는 누님의 컨비언스가게를 메니저로서 봐주고

있는 데 시내의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엊그제 만났더니 그 곳에서 사탕으로 스시를 만든 것을

보여 주면서 요즘 그 동네 대박 상품이라고 웃었다.

아마 한국에서 캐너디언 상대로 사업 생각하면 기훈이랑

한 두시간 대화를 해보면 좋은 인스피레션을 얻지않을까

싶다.

늘 그래도 뚜렷히 뭘 한다기는 이 프로 빠진 것 처럼

여유가 느껴지는 기훈이가

애 들은 제일 잘 키워내는 것 같다.

나 역시 옆집 같이 살던 회계사 친구가 건물도 사고 점점

발전해가는 데 장사하는 우리는 발전이 없냐면서

혜진이엄마 한마디 하는 데 나 역시 열심히는 살았는데

별로 결과없는 것은 마찬가지,

인생이 이런거가 싶다.

그래서 얼레 벌레 그래도 제일 잘 사는 기훈이가 꾸준히 낙천적인 기훈이의 변신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