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 눈발이 살짝 흩날렸다.
겨울채비를 해야 한다.
긴 겨울을 또 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데 무엇보다 요 근래 두 어달 불경기로 뼈를 깍는 구조조정을 단행했어야 했다.
모두들 모여 회의도 해 보았지만 별로 답은 없고 판단은 내 몫이었다.
말이 그렇지 뼈를 깍는 느낌이 뭐라는 게 문자의 깊이가 좀 느껴졌다.
사람이 그냥 좀 평온히 사는 게 이렇게 힘든건지.
근무시간을 전부 줄일려 생각도 해 보았지만 모두들 계획 된 생활이 있는 듯 보여 스시맨 한분을 방출하고 대신 그 분이 쟙을 잡을 때 까지 일 주이든 이주든 삼주든 그 동안은 그 분 편의를 봐 드리기로 했다.
원래 입사할 때 서로 관둘 사정이 되면 이 주 노티스를 주면 된다고
직원 입장에서 이 주를 지키는 분도 있고 갑자스런 사정으로
며칠만에 가끔은 그 날로 관두기도 한다.
하지만 거꿀로 오너 입장에서 그 말을 해야 자체가 무척 힘이 들어
좀 처럼 꺼낼 수가 없다
그래서 노티스 기간만큼은 그 분의 사정에 맞추어 이 주든 한 달이든 그 분 상황에 따르기로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그 말 자체가 너무 힘들었지만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나도
그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분들은 자리 구하기 힘 들지만 스시 쉐프는 연말을 앞두고
비교적 쉽게 구할수도 있기 때문 인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분 없는 만큼 앞으로 내가 다 해나가야 하는 것도
엄두가 안나지만 어쩔수 없는 것 같다.
그 쉐프는 이해하고 어차피 본인도 좋은 자리 있으면 이 주 노티스 주고 나갈 수
있는 것이 통념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며 편의를 봐 주어 좋다며 대신 위로를 밨았지만 신경 쓰여 식당을 나왔다.
요즘 같으면 괜히 비즈니스를 시작했나 싶고 답답해서
혜진이 엄마를 불러 두어시간 일탈을 했다.
스카보로의 브림리 로드를 따라 남 쪽 끝까지 가면 블루퍼 파크가
있다.
온타리오 호수의 수평선이 보이고 공원의 해안을 거닐어 보고
공원에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커피도 한 잔하고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혜진이 엄마와 왔을 때 하버에 정박 된 요트를 바라
보며 맥주도 두 어병 했지만 오늘은 그럴 수는 없었다.
어차피 점심은 먹고 가야 해서 커피에 햄버거를 먹었는데
햄버거 하나 십 이불씩이나 해도 맛이 있었다.
가운데 고기가 저민 것이 아니고 비프를 얇게 해서 포도주와
양송이를 같이 살짝 볶았는 데 질감이 아주 부드럽고도 쥬이시해서
마른 햄버거 빵에도 잘 넘어 갔다.
하버에 정박한 요트도 겨울 채비가 열심이었다.
요트 위에 나무 구조물을 조립하고 그 위로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눈 내리고 바람 부는 겨울 동안 배를 보호 할려는 것 같다.
참 노는데 부지런한 그 사람들이 부럽다.
똑 같은 삶인데 이렇게 다르구나 내심 생각도 했보았지만
각자의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려니 싶다.
그리고 너무 열심인 모습이 바다나가기전에 단장하는 노인과 바다의
어부처럼 진지한 모습이 숙연해 보인다.
돈 쓰는 일도 열심인 모습이 보기는 좋다.
꼭 부자라서 요트를 즐가는 것 같지는 않은 것이 캐너디언 같다.
아마 이걸 좋아서 즐기는 만큼 다른 부분 아끼고 또 직접
저렇게 겨울 채비를 하지않나 싶다.
잠시 밥 먹는 동안 이런 저런 별로 희망적이지 않는 싸늘한
현실의 얘기를 나누어도 밥은 잘 넘어 갔다.
버티다 보면 또 좋은 때가 있으리라고.
그리고 잠시 비취를 거닐고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호수가
아니라 바다같은 느낌이 든다.
십 육년 전에 처음 이민와서 네 살된 혜진이가 바다라면서
우겨서 물 맛을 보라고 얘기 했던 것이 생각도 났다.
여기 공원에 있으면 꼭 부산의 어디에 와있는 느낌이 들어 맘이 편해진다.
사람은 빵만으로만 살지 않는 정서의 비타민도 가끔 필요한 것 같다.
이 공원은 두 어시간 일탈을 하기 좋은 곳같다.
석회암으로 된 절벽도 보고 언덕위의 집도 보고 해안을 따라 있는
숲길을 따라가다보면 시름을 잊는다.
그리고 여기 공원에 있는 무례한 갈매기를 보면 살아야 되겠다는 맘이 더욱 든다.
여기 갈매기는 사람과 친해서 겁내지않고 뭘 맡겨
놓은 마냥 달려든다.
그만큼 이 동네 갈매기는 무척 적극적이어서 먹을 것 들고 다니면 쫄쫄 따라오고
먹을 부스러기를 던져 주면 쟤들 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삶의 또 다른 본질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