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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토론토 일식 요리사 고 장 광수 그리고 울릉도 식당

박진양 2012. 11. 2. 03:41

구십육년도에 처음 이민왔을 때는 한식당이나 일식당이

많지는 않았다.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할만큼 여유도 없었고 그래도 가끔식

가는 한식당이 참 고맙고도 크게 보였다.

그래도 여러가지 면에서 싸고도 양질의 우리 음식을

맛 본다는 것는 해외에 사는 교민으로서 고마워 해야할것

같다.

교민들의 인구도 많이 늘고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와있는

학생들 인구 덕분에 식당도 많이 늘고 해서

규모의 경제로 음식 수준도 많이 좋아졌다.

첨 이민왔을 당시에는 식당도 별로 많지 않을 때

스카보로의 조그만 일식과 한식을 같이 하는 울릉도라는

식당이 있었다.

음식맛도 좋았고 조그만 식당에 끊임없이 손님이 드나들어 사랑방같은 친근한 분위기에 오가는 손님의 몸을 부딪히면서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토론토의 웬만한 한국교민은 다 오고 가고 그 때 한국에서

유명했던 꼬리를 무는 영어의 작가 한 호림 선생님도

단골손님이어서 자주 뵙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스시바에서 조그만 키에 영화배우 김범수닮은 사람이 나중에 보니

식당 오너였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뭘 해야할지 결정을 하지 못한 이민

신입생이라 하늘처럼 높게만 보였다.

그런데 우리 식당을 관두고 나간뒤 처제가 새로 그분이

셑업하신 식딩에 일을 함으로써 조금씩 안면을 트고 해서

만남의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성장해 갔다.

그 분은 연세도 나보다 네 살 정도 위이고 한국에서 부터

명성이 알려진 일식 요리사인데 성격이 내성적이라 낯을 처음에 좀 가려서 그렇지 알고 보니

인간적으로 그만한 분은 드문 것 같다.

누군가 내 친구중에 휴머니스트를 강조하는 데 그 분은

정말 그런 향기가 짙게 품어나오는 것같다.

그런데 식당을 하다보니 한 없이 착하고 좋으신 그분의

상처받은 마음과 아픔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그 당시 그 분은 그 식당으로 돈을 많이 벌기는 했는 데

옆에 있는 지하의 노래방을 운영하느라 옆으로 돈이

많이 샛다며 술 한잔 하면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간간히 술도 한잔 하며 노래방 가서

같이 노래도 하곤 했는 데 혜진이엄마가 울릉도 같은

고향이라 고향사람모양 맘 편하게 시간을 함께 했었다.

그 식당에서 같이 일힜던 제니를 통해서도 그 식당에서

너무 일을 애착이 느껴질 정도로 잘해서 주인마님으로 알았던 미세스 강도 우리식당에서 일을 해주어 사실은

좋은 얘기를 많이 들어섰다.

그 때 식당주인으로서 애로사항등도 같이 듣고 언젠가는

손님이 너무 밀려왔는 데 그 형님이 칼을 놓고 어디론가

몇 시간을 증발을 하셨다고 했다.

나중에 어디 가셨냐고 물었더니 양지바른 비취 어느 한구석에 주차를 하고 차안에서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었

다고 했다.

참 오죽하면 그랬을 까 하는 생각이 식당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났다.

그즈음 해서 형님이 지금 해룡반점 자리인 수 식당을 팔고

노스욕에 킹스시를 셑엎했다.

왜냐하면 대장암 말기라 얼마나 살지를 몰라 형수님 혼자 핸드링 가능한 일식당을 해서 물려줄 생각이셨다.

그렇게 유명하고 솜씨있는 요리사였지만 사람들이 야속해야 하나, 언제 아프다는 소문이 났는지 아픈 사람의 음식을 안 먹는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식당도 다시 헐 값에 넘기고 다른 식당의 일을

며칠씩 봐주며 항암치료를 중간 중간에 받고 있었다.

그 어느날 같이 노래방을 갔는 데 내가 강산에의 너는

할 수있어라는 노래를 열창을 했다.

음치인지라 노래방에 환영을 못 받는 데 노래 못하는 놈이

흥은 넘쳐난다.

그 날따라 형님의 가슴에 가사가 필에 와 닿았는 지

나를 볼 때 마다 할수있다며 웃곤 했다.

처음에 식당 오픈해서 자리 못잡고 사람 아쉬울때 형님과

형수님이 와서 도와주기도 했었다.

그러다 리치몬드에 올라가는 고갯마루에 큰 식당을 열어

다시 도전을 했었다.

여러 콤보 메뉴로 돌아온 장고처럼 비즈니스가 괜찮을

무렾에 암이 퍼져 중도에 관두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항암 치료를 받고 손수 운전을 하다

영 핀치 부근에서 경찰차를 받았었다.

형님 하신 말씀이 경찰차 받으니 엠블랜스는 빨리 오더라는 얘기에 경찰이 안돼었지만 살짝 같이 웃었다.

그리고 서로 바쁘게 생활에 묻혀 지나다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참 열심히 살아볼려 애쓰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첨에 무뚝해보여도 알면 알수록 깊이가 있고 은근히

유머도 엮어가실줄 아는 맘여유도 늘 있어셨다.

요리에 대한 열정도 뜨겁고 사람에 대한 애정도 많았는데

캐나다 토론토에서 울릉도라는 식당과 장 광수 라는 삶의 흔적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맘과 나도 잊지않고 싶어서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