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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삶의 스승 김언니

박진양 2012. 9. 22. 13:38

사람이 살면서 가끔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만남이

있는 것 같다.

그 무렵 내가 열심이 부족한 탓인지 주방사람이 흔들리다

아주 내공이 단단한 사람이 들어왔다.

김언니라고 캐나다에서 춥기로 유명한 위니펙에서 삼년

정도 살다가 토론토로 고등학교 다니는 딸과 함께 왔다.

첨엔 여자가 제대로 주방장 역활을 할까 하는 맘이

들었는 데 식당일을 요령있게 쉽게 처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더쉽이 있어서 식당의 모든 스텦이랑

친하게 잘 지냈다.

뒷주방의 디시와셔일이 바쁘면 살짝 뒷쪽에서 활약해주고

홀에서 바쁘면 결정적인 순간 살짝 도와주는 기지가

있었다.

게다가 장비까지도 맥가이버처럼 고치기도 했다

템푸라 프라이어까지 문제가 있으면 가만히 생각해서

원리를 파악한 뒤에 문제점을 고쳐 나갔다.

아마 공대를 갔다면 인재가 되었을 것 같다.

무슨일이든 관찰력있게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생각하는 게 취미인 것같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힘든 식당일에 한 몸 가누기도 힘든데 남까지 챙기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우리 식당 디쉬와셔를 하던 미스터 오라고 있었다.

착실하고 일도 잘하고 체격도 스포티하게 아주 좋았다.

어학과정에 유학을 와서 영어는 안 늘고 하니깐 스트레스

를 많이 받았다.

가끔 민감해서 오너입장에서는 콘트롤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김언니가 뭐라 그랬는 지 고분한 한마리 양의

품성을 지닌 황소로 변했다.

나중에 보니 언니가 충고를 하기를 공부 재주도 보아하니

없으니깐 한국보다 여기 눌러있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자동차 정비쪽일을 전문대에서 배워 보라고 했다.

그래서 컨티넨탈 칼리지를 준비해서 입학하고 무사히

졸업했다.

그리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해서 취업비자를 받고

얼마전에 영주권이 나왔다면서 제작년에 지금 식당으로

와인 한병을 들고 인사를 왔었다.

그때 토론토 대학원의 심리학과를 나온 시민권자인

한국인이세와 곧 결혼 할거라고 했다.

그런 걸 보면 언니는 평범한 현실을 특별함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랑 알고보니 동갑이었는 데 정신연령은 아주 높았다.

고등학교 졸업후 옷가게를 해서 돈도 많이 벌고

결혼해서 시댁의 재력을 조금 바탕으로 해서 큰 식당도

운영해보고 맘 고생이 있었는 지 절에서 사주등 동양철학

도 공부한 모양이었다.

일단 내 입장에서는 언니가 들어오고 난 뒤에 식당이

안정되어서 사람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식당이 암만 바빠도 기지를 발휘해서 해내깐

든든했고 든든하다고 느껴서인지 오너 입장으로

인간적 관심이 가져졌다.

마더데이때 별로 준비를 안했는 데 낮에 천오백불을

팔았는데 앞주방에 언니혼자서 다 해냈고

저녁에도 삼천오백불을 팔았는 데 저녁 헬퍼 한사람으로

주방오다를 지켜내었다.

박리다매인 그때식당에서 주방에 거의 혼자서 그정도 매상을 처리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때 언니 허리가 살짝 내려앉는 것을 느꼈단다.

그 뒤로는 언니한테는 맘 빚을 크게 느꼈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고 싶었다.

나중에 따님도 그 식당에서 일을 하고 그뒤로도 친척이상

으로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그 즈음해서 언니가 내게 얘기를 했다.

내가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내가 언니가 그 근처에 살아도 퇴근하면서 한번도

픽업을 안 해줘서인가.

나도 그런 얘기는 별로 들었던 적이 없어 다시 왜냐고

물어 보면서 친구로서의 친분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서 사람한테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그래야 삶이 편해진다고 했다.

그때 특히 내가 사람에 지쳐 관심없는 것을 제대로 지적을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