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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이천사년의 몰락

박진양 2012. 9. 21. 03:37

첨 이식당을 엉겁결에 인수받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뛰어갔다.

뛰어 가다보니 잘 되는 지도 잘 모르면서 막연히 좀 되는구나 싶어 숨 한번 고를 사이에 사스가 와서

바닥 가까이도 떨어져 보고 다시 언덕위에 기어 올러와

전망볼 때 토론토 대정전사태도 겪어며 마음이 많이

떨어졌다.

또 무엇보다 떨어진 것은 그 즈음 해서 별로 사는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중에는 갱년기인지는 몰라도 시멘트 보다 더 단단할 줄

알았던 부부사이가 소원해지며 등위에 늘 찬 바람이

스쳐감을 느낀 것 같다.

아내는 아내대로 애들 키우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어찌할 수없는 친인척 관계로 힘들어 했고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인 것 같은 무력감과

가장으로서 별로 대접 못 받는 것 같은 존재감 상실은

현실을 개척해나갈 의욕을 부족하게 만들었다.

살다보니 나만의 문제라 생각했던 문제는 사실은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젯밤에도 지인들과 모처럼 술을 마시며 한 지인의

가정사에 많이 공감 했다.

와이프의 조카에 기대 했던 무엇에 못 미쳐 참다 한번

얘기한게 서로 상처가 되고 어떻게 마음푼다면서

어머님한테 한 얘기가 그 어머님 가슴에 못 담고

사돈께 그대로 감정을 표현 했다가 사태는 돌고 돌아

걷잡을 수없이 되었단다.

당장 누가 죽고 다친 것도 안닌데 사람 마음의 상처는

말 몇마디에 그렇게 될 수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때 조금 더 현명하고 생각을 깊이 하고 현실을

잘 이해해서 받아들였다면 지금에서 보다 나은 위치에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조그만 그 물줄기의 시작이

행복과 불행의 바다로 바뀌고 나눠 지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한 섭섭한 감정만큼 해결도 없이 나쁜 것은

없는 것같다.

그때 처남, 처제 얘기를 하다보면 잘 해결할려고 시작했

다가도 결론은 묘한 방향으로 흘러 부부싸움으로 연결

되었다.

요즘 보면 친인척 문제는 해결할려고 하기보다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아니면 차리리 포기하고 인정하는 것이 나을뻔 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친인척이나 친구가 온다고 해도

쉽게 책임져 준다는 말을 못한다.

물론 오면 당연히 좋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미리 어떤

기대감을 줄수있는 말을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인 것같다.

어쨋든 그 때는 주어진 현실보다는 살짝 도피를 했다고나

할까.

스시바는 이십 대 철없는 청년에게 맡기고 일주일에

두번이상은 낮에 골프치고 아침에는 매일 골프 연습장에

갔다가 출근했다.

그렇게 해도 당장에는 큰 표시는 없었는데 한 일년 지나면서 매상도 조금 떨어 지고 식당의 성장 동력이

부족해진 것을 느꼈다.

차라리 그때 과감하게 팔고 새로운 식당을 하던지

아니면 주어진 칙칙한 현실을 개척해나갔어야 했는데

쇠락해가는 역사의 어느 왕국처럼 시들어갔다.

참 스몰 비즈니스라는 것이 꽃을 키우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을

느꼈다.

참 꾸준하게 버텨 나가기위해서는 항상 꿀꿀한 감정이

쌓이지 않도록 잘 풀어나가고 누구나 처절하게 살아가는

하루라고 나만 고생하는 인생이 아니라고 지금 이 순간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언젠가 같이 웃고 얘기할 친구가 같이 뛰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골프를 치다보니 골프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

처럼 느껴지고 몰입했다.

그 조그만 구멍에 공 넣는 것에 뭔 인생의 중요한 시간에

열정을 다했는 지.

그렇다고 골프를 엄청 잘 치는 것도 아닌데.

그걸 통해서 남 한테 조금이라도 인정 받을려는 보상

심리였는지는 몰라도 새벽에 들판의 바람은 맞으며

한 샷 마다 느껴지는 삶의 에너지는 좋았다.

그뒤에 몇 년간 골프를 끊었더니 그 때 감은 다시 살아

나지않는 걸보면 참 허무한 운동이다.

골프가 좋아도 너무 깊이 빠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보다 삶이 그대는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는 푸시킨의 삶의 예찬을 음미하며 현실의 쳇바퀴안에서

이민 생활의 단추를 끼워 나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