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삼년도 홀쪽 스텦진도 괜찮았다.
대표언니는 수쟌씨였다.
육십삼년생으로 당시 서른 아홉 나이인데도 누가 새로
들어 와서 물어 보면 스물 여섯 일곱으로 얘기할 만큼
젊게 보이고 예쁜 분이었다.
용모보다 마음씨는 더욱 예쁘서 한 마디 가끔 말할때마다
고운 맘씨 묻어나서 사람들이 아주 좋아했다.
그 전에 홍천씨는 아주 녹아내릴 정도 였다.
아저씨가 엔지니어 출신으로 독일회사에 근무하다가
이민을 오셨다.
그때 가끔 따님 둘 다 고등학생이고 가끔 놀러왔을 때
너무 이쁘서 홀이환해졌다.
셋이서 앉으면 세자매라 보일정도로 수쟌씨도 만만찮았다.
그 미모로 친절하게 서빙을 하면 중국 손님들은 쓰러졌다.
한 일년 반 정도를 해주셨고 나중에 뒷 주방에 새로온
젊은 친구가 좀 예의가 벗어난 심한 얘기를 해서 속이 너무
상해서 관두었다.
맘씨 예쁜 사람은 스트레스에는 약했다.
그래서 아저씨가 다니던 공장에서 생산 쪽 파트에
취직이 되어 얼마전 까지도 계속 다니고 있었다.
여기 공장에서 하는 일이 생각보다 보수도 좋고
베니핏이 좋아 부부 두사람이 하면 웬만한 비즈니스
보다 나은 것 같다.
그리고 야생마 지영씨가 있었다.
당시 서른 셋 정도의 수수한 용모의 아가씨였는 데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간호과에 다니기위해
어학코스를 다니며 일을 했다.
맘씨가 너무 착하면 멍해 보이는 데 뭐라 그레도
성격이 좋아 잘 받아 들여 주었다.
일이 안늘것같아 걱정했는 데 의외로 잘했다.수수한 용모지만 건강한 매력이 있는 다리를 짦은 치마로
부각시켜 홀을 질주하는 모습이 야생마가 달리듯 건강한
매력이 넘쳐났다.
원래 아가씨 나이 들면 샐쭉하곤 하는 데 웬만한 일은
캐너디언 처럼 어깨를 한 번 어쓱 하며 지나가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모두들 따라했다.
가끔씩 회식하면 술도 잘 마시고 말도 재미있게 해서 참 분위기를 많이살려 주었고 어디서나 존재감이 있었다.
아마 지금쯤 어느 병원에서 한국의 빛을 비춰주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눈물의 공주 지숙이가 있었다.
당시 열 일곱 나이의 앳띈 고등학생이었다.
너무 어려서 채용 안할려 했는 데 자기는 할 수있다면서
시켜 보라고 해서 해보았다.
일하다보면 상황이 뭐라 그럴수있는 때도 있는 데
금방 큰 눈에 눈물이 맺혔다.
거기까지는 제 또래랑 같은데 눈물이 나도 웃으면서
눈물을 살짝 살짝 훔치며 홀을 뛰어 다녔다.
나중에는 어린 나이인데도 판단력과 임기응변이 뛰어나서
일은 식당에서 제일 잘했다.
아버님은 해양대 나와서 선장을 하시고 어머님과 함께
이민을 왔는 데 언니도 있어 하겠다고 해서 트레이닝
시켜 보았는 데 똑 같이 예쁘도 일은 아니었다.
지숙이는 이큐가 발달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오래 일을 하고 미국에 있는 명문 대학의
디자인과에 들어갔다.
캐나다에서는 일을 한다고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성을 배우며 애들이 내적으로도
클수있는 곳이 되는 것같다.
지숙이는 일을 해서 학교 생활과 공부 모두를 다
즐기며 했던 것 같다.
돈이 없어 일을 한것은 아닌데 아마 일을 통해서 캐리우먼
의 짐재성을 깨우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