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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꿈나무 제이

박진양 2012. 9. 13. 04:45

그렇게 처남이 나갔어도 처제는 그 뒤에 일년간을 더 있었고 다른 가게에 있어도 종종 보고 지냈다.

서로의 기대감과 부족한 능력이 죄이지 누구를 탓할수

없는 문제인것 같다.

여기 이민와서 열의 아홉은 친척끼리 잘 못 지낸다고

내 글을 보고 주위에서 다시 한번 얘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이년 이상 일한 주한이도 나갔을 땐 마음이 또 한칸 내려갔다.

나역시 비즈니스이상 너무 기대하고 살았던 것같다.

그 뒤 부터는 사람이 별로 기억이 덜 날 정도로

한동안 사람한테 마음의 문이 닫혀 지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우리 식당에 아는 형님의 아들 제이가

들어왔다.

당시 제이는 고등학교 이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제이의 아버지는 내랑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와서

이웃집에 살아 처음에 같이 여행도 하고 얘기도 많이

하고 지냈다.

한국에서 증권회사 부장님으로 은퇴해서 여유가 있어

몇 년 쉬고 계시다가 내가 식당할때 테이크 아웃도

해주시고 하다 식당이 괞찬을 것 같다면서 식당을 하셨다.

스카보로의 미들랜드와 쉐퍼드 근처의 중국 몰에 이찌방

이라는 여기에서는 유명한 프렌차이즈 스시집을 하셨다.

장소가 안 좋았는 지 삼 사년 동안 많이 버티다 나중에

뱅크럽을 했다.

그래서 형님은 다른 곳에 일하고 제이가 여기에서 일하게끔 했다.

제이는 고등학생이라도 국민학교 육학년때 부터 집안일을

도와서인지 일을 아주 잘했다.

나중에 보니 부모님 끼리 사이가 안좋아 갈등도 많았을텐데 우리 식당의 형들과 친하게 지내서 마음의

안장을 많이 얻었던 것 같다.

제이가 워낙 반듯하고 착했지만.

한국에서는 여유가 있어 여행도 많이 다니고 했는 데

캐나다에서는 아주 마당쇠로 자라났다.

허긴 여기서는 중국의 부자라도 마당쇠로 키운다.

그리고 캐나다가 좋은 점은 사업하다가 파산해도 파산신고 하고 칠년 간 지나면 원상 복귀된다.

즉 하다가 안 되면 사업자체가 끝인 것인지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칠년 지나면 다시 시작할 수있다.

그동안 캐쉬쟙을 잡고 생활하면 된다.

그 것때문에 애들이 방황하고 그러는 것은 볼수가 없었다.

더 열심히 살아서 잘 된 것은 많이 봤다.

제이도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해서 폴리스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삼년간 교육받고 지금은 경찰이 되었다고 들었다.

폴리스 아카데미 다닐때 아버님이랑 제복을 입고 뒤에

식당으로 찾아와서 본 적이 있었는 데 참 대견 스러웠다.

여기는 공무원이 정말 괜찮고 경찰은 더욱 좋다.

베니핏도 좋고 보수도 대기업 이상으로 높고 안정적인

쟙이라 긍지가 대단하다.

또 캐나다에서는 법의 권위가 높아 이런 경찰등 일선

공무원의 권위 또한 무척 높다.

그리고 청소년 들의 쟙이 있어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사회와 잘 혼합되어 적응할 수있는 쟙이 있어 좋은 것같다.

그 바탕은 보수가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또 거꾸로 얘기하면 비즈니스하기 힘들어서

제반경비 인건비 빼면 본인 열심히 이한 것 플러스

투자비와 위험 부담 생각하면 대개 비슷한 것 같다.

어쨋든 그 때부터 일 이년 대우가 저녁 타임과 주말에

수고를 많이 해주어 참 고마웠다.

참 두살 많은 누나도 대학을 졸업해서 지금은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어른들의 성공여부를 떠나 애들은 애들대로 적응할 수 있는 갓이 캐나다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