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뉴욕 2
캐나다는 넓기는 하지만 인구가 적어 도시를 벗어나면
저 푸른 초원이다. 물론 아름답지만 사람이 없으면
사람이 그립다. 아름다운 풍경도 계속 되면 쾡한 느낌이
든다. 미국은 선을 띠라 꾸역꾸역 주택이 끝없이
연결 되었다. 나중에 차를 몰고 미국의 여기 저기를
많이 다녔는데 동서남북 어느쪽으로 몰아도 끝없이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여새를 몰아 맨허턴으로 입성했더니 악 소리도 안나왔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고층빌딩의 위세에 눌려 버렸다.
저런 건물의 대부분이 일제 시대에 건설됐다니 헐!
건물 자체가 다 중후해보였다.
맨허턴의 노란 영업용 택시가 촌에서 왔다고 얼마나
반기는지 난리였다.
갑자기 한국에서의 감각이 살아나서 연신 감자도 먹이고
빵빵거리고 너무 너무 신이 나서 두바퀴를 돌았다.
하늘이 이모는 뉴저지에 살고 있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님의 어머님같은 하늘이 엄마와
달리 대찬 캐리우먼이었다.
홍익대 미대를 니와서 미국의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인
이세랑 결혼해서 세살 한살 남자 애들 둘을 키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프리랜스로서 벽지 상담을 주택 구입자들과
상담 해 주고 한달에 팔천불에서 만불을 번다고 했다.
캐나다의 시골에 있지 말고 다 오면 방법이 있으니까
미국으로 오라고 했다. 보니 일단 미국은 시장이 크고
쟙의 다양해 선택권이 있는게 캐나다보다 좋아 보였다.
다음날 뉴욕 하루 관광코스가 한우리 슈퍼마켓에서
거의 매일 있는데 식사포함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타임스퀘어, 자유 여신상, 센터럴파크등 웬만 한것을 둘러
볼 수있다. 저녁에 이모를 다시 만나 브로드웨이 가서
뷰티 앤 비스트라는 뮤지컬을 보았다.
뮤지컬은 보면 그 자체로 추억이 되었다.
애들이 너무 좋아 했다.
그리고 저녁에 이모님 미국 강의..
돌아올 때 국경을 건너 캐나다에 올 때 고향에
온 것 같았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뒤에 뉴욕을 몇 번 더 깄다.
첨이 힘들지 시작하니 질도 나고 찜질하로도 가고,
음식도 푸짐하고 소주 값도 싸고 해서 반은 한국같았는데
여기 토론토도 한인 인구가 늘어 많이 평준화가 지금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