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기회의 시간 2
비즈니스는 잘 되어 가고 있엇지만 규모의 경제에는
어쩔 수없이 한계가 있었다.
호박이 한번 구르는 것과 사과가 구른는 것에는
차이가 났다.
샘아저씨는 항상 아이디어가 빛났고 활력이 넘쳐났다.
새로운 것에 도전 정신이 아주 좋았다.
성공적인 동업이라 소문이 좋게 났고 이참에
큰 식당을 해보고 싶어 했다.
나는 웬만하면 안전빵이 좋았으나 어차피 동업인 것을 대세를 띠르는 것이 더 무리가 없다고느꼈다.
작은 식당에 많은 영웅이 언젠가 내분의 소지가 되는 것 보다 이 인재로 외부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본이 문제가 되면 이번에는 샘아저씨가 많이 투자하겠다고 해서 아! 나도 드디어 인정받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식당자리를 다시 여기 저기 알아 보았다. 그 중에 세 곳이 물망에 올랐는데 나중에 이 삼년 뒤에 보니 다 잘 된 것을 보니 안목은
확실히 있었다.
최종적으로 식당에서 얼마 떨어 지지 않는 곳에 중국 커뮤너티에서 유명한 플라쟈가 있었다. 그 플라쟈를 둘러싸고 대형 콘도가 여덟 동이 있었고 그 주위를 주택단지가 둘러싼 그야말로 알짜배기 목이었다. 장사는 목이라는 데 정말 목이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플라쟈 안에 대형 슈퍼, 은행, 병원, 크고 작은 식당들이 세벽까지 영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 던 것은 식당 뒤쪽으로 유명한
퍼블릭 스쿨이 있어 혜진이 한테 좋을 것 같았다.
중국커뮤너티에 있는 학교는 교육열로 인해
수준이 높다고 들었다. 그 옆에 사립 몬테소리
학교가 있어 혜인이 한테 좋은 기회였다.
혜진이 엄마는 돈이 들더리도 몬테소리힉교는
밸루가 있다고 얘기 해왔던 차였다.
그리고 걸어서 일분 거리에 콘도가 있어 비즈니스를 이 쪽에 해서 이사까지 오면 교육환경과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질 것 같았다.
그야말로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이 연상되었다.
문제는 그 식당의 매상이 별로 없었다.
천 오백 스퀘어 피트로 그리 커지도 작지도 않거
리노베이션을 좀 하면 좋은 식당이 될 것 같았다.
식당 가격은 칠만불로 부담이 없었지만 무조건
지파짓 만 불을 원했다.
위치좋고 가격좋은데 매상을 보면 망설이다
몇 번 캔슬을 한 것 때문이라는데
어차피 메상이 없어 싼 것인데 가능성에 투자하고
그날로 바로 디파짓하고 계약을 했다.
그리고 식당을 팔려고 했더니 이십만 불이라도
매입할려는 바이어가
그중에 미국에서 한식당을 하셨던 분이 매입할려고 했는데 랜드로더는 우리가 계속 하기를 바ㅇ고 계약이 다 된 상황에 또 다른 흥정을 할려는 무리한 바이어 등에 교착 상황에 빠졌다.
그때 샘 아저씨는 식당을 매니저로 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여기서는 이런 종류의 계약이 종종 있기도 하다.
그래서 보증금 삼만불에 매달 오천불씩 받기로
하고 방향이 급 선회해서 식당을 두 개 운영하는
셈이 되었다. 삼인 이각 경기, 매니저를 하는 서니까지
하면 세 사람이 간접 동업을 하는 셈이 되었다.
매니저 계약을 많이 보았지만 일단 수입이 괞찮아야
현실적으로 계약이 유지되는 맹점이 있었다.
다행히 서니내외도 열심히 잘해서 좋은 기회가 되었고 비즈니스는 꾸준히 유지가 되서 새 식당셑업에 전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