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18 년만에 가 보았던 한국 3. 고등학교 친구도 보고

박진양 2015. 3. 12. 14:54

 

멀리 외국에서 살다보면 제일 생각나는것이 당연히 부모 형제 등 가족이겠지만 막상

무슨말을 할려해도 전화기 잡는 것이 힘들다.

늘 생활에 허덕이고 더군다나 비즈니스를

하니 잘 될 때도 있지만 내 소망과 달리

주위 여건으로 인해 다운될 때도 있고

번 돈 밀어 넣을때가 많아서 맘 여유 조차 없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을 토하려니 궁색해지고

지고 해서 점점 맘과 달리 전화기가 점점

멀어진다.

그럴수록 더욱 고향 생각과 어렷을 적 친구

얼굴이 떠올려진다.

작년 여름에 한국을 짧은 시간으로 다녀와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틈틈히 친구 얼굴이라도

본 것이 큰 보람이었다.

이민 생활로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짧은 현실을 과거의 추억으로 인해 삶을 길게 연결 해준 듯 했다 .

친구라고 두어번 소주 한잔 기울인 것 밖에

없는데도 잊고 있었던 자신의 한 부분을

되찾고 가치관 또한 여유로워 진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특히 고 2 무렾 공고를 진학해서 적성에 맞지 않아 무척이나 힘들었다.

사춘기 또한 그 무렾에 겪어서 정서도 불안정 했었다.

그런데 다른 학교에 다녔던 공고 친구인데

어떻게 도서위원회 라는 서클을 통해서인지

옆 집에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엄청 친하게

지냈다.

서로의 트라우마를 나누기도 하고 미래의

그림도 같이 그려 나갔다.

그 친구는 학도 호국단 기수를 할만큼 키가 엄청 컸고 키 만큼이나 시건 (경상도 사투리)

이 깊었다.

그 학교에서는 수재로 알아주었는데

그 친구 눈에는 내가 뭐 좀 있게 보였던 것

같다.

이번에 만나 보니 학교 선생님을 하는데

역시 톡톡 튀는 좋은 선생님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열정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그래서인지 히말라야 트레킹을 그 즈음에

다녀와서 같이 산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친구 마지막으로 본 것이 거의 삼십년 전

내가 히말라야 입산 허가증 받고 여권 만들어 인수봉에서

훈련하다가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보다 내가 첫 담배 너눈 친구 였던 것도 알았다.

고 2 때 마산의 태양극장에서 담배를 첨

피웠다고 한다.

서로 여러가지 처음 이었던 많은 추억이

있었다.

마치 추억의 보석상자를 같이 열어본 느낌이었다.

그 친구의 얆전했던 와이프는 애들 키우고

신학교를 다녀서 조그만 교회 목사님을 하고

있는 모습도 신선했다.

언제 기회 되면 이 친구의 얘기를 하고 싶다.

나이 오십 중반을 지나면서 사춘기 시절

친구를 만나고 난 일년 쯤 지난 이 시간 나에게도 변화가 왔다.

요근래 술을 아예 몇 달간 끊었다.

맘에 집착이 없어진 바탕으로..

술을 끊었다기 보다는 자유로워 졌다고 표현하고 싶고

앞으로 그러고 싶어 당분간 절주를 한다.

모든 것은 맘에 기인하고 느낌의 산물이

삶을 이끌어 간다고 믿고 있다.

꿀꿀한 느낌을 상쇄해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고나

할까.

살아 있는 순간 순간에 쏟아 붓고 있어 술이

위로 해줄 틈이 없어졌다.

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한다.

만날때도 있고 헤어질 때가 따로 있는 듯하다.

외로움 자체도 소중한 감정 이라는 것을

친구를 다시 만나고 난 뒤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늘 그 자리에 있는 친구가 있음으로 다시 돌아온 캐나다 척박한

삶의 굴레가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의 꿀꿀함이 덜해 져서 자유롭다.

당분간 이 느낌 술 안마시고 취한 느낌 갖고

있고 싶어 절주를 하는 것 같다.

친구야.

다시 만날때 한 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