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캐나다에서 식당 공사 2.

박진양 2014. 8. 14. 19:32

 

사람이 살면서 힘들다 하는 말의 무게는

그 위치에서 겪어봐야 가지는 것 같다.

15 년 이상 캐나다에서 식당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일하는 동료로서 때로는 식당을 운영하는

오너로서 같이 동병상련의 맘을 나누었다.

그 중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고 심한 우울증인지 몰라도

자살을 하신 분들도 보았다.

치솟는 렌트비와 경비등으로 속앓이를 하다 병을 얻는 많은 스몰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남의 일 같다가 내가 당해보면

정말 사람이 이래서 죽는구나 싶을때가 많았다.

이렇게 글을 적어보면서 맘을 내려놓고

추스러지는 지 모르겠다.

2014 년 4월 말에 7 년간 운영해 온 식당을 팔았다.

장사는 잘 된다고 소문도 나고 손님도 많고

평도 좋아서 나쁘지는 않는 가격에 팔았지만

첨 셑엎 시 리노베이션으로 너무 투자가 되어 그 만큼은 아니라 아쉽지만 여러가지로

지쳐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팔았다.

물론 그동안 담에 할 가게를 생각해서

지난 몇 달간 미국 텍사스 를 비롯해서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와

근처의 워터루 와 피터보로우 등의 일식당을

참 많이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다음 행보에도 바쁘기도 한 때에

판다는 날짜 ( 여기 캐나다는 클로징 데이트 한다) 를 앞두고 마지막 서류 점검을 변호사 가 하면서 칠 년전 식당 오픈시 했던 공사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눈 앞이 캄캄했다.

아!

이게 멘붕이구나.

싶었다.

캐나다에서는 특히 어떤 경우를 직접 당해

봐야 아는 경우가 너무 많다.

집을 팔다가 크로징 단계에서 시청에서

집과 관련해서 오픈 되었다고 해서

거래가 안되거나 할려면 다시 많은 돈을

들여서 해결후 거래를 경험 하신 분들이

나중에 보니 의외로 많았다.

나도 칠년 전에 시청에서 나온 인스펙터가 검사를 끝내고 다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식당을 오픈 했었다.

두달 예정이 오개월 이상 걸리고 계획 이상

많은 돈이 들어가서 나중에 식당이 잘 되어도 그 때 진 빚에 인한 경제적 가위에 눌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생각 하기도 싫었던 기억이 다시 현실이 되었다.

알고보니 그 때 공사를 했던 업체가 엔지니어에게 리포터를 의뢰해서 시청의

인스펙터에게 보내서 최종 검사를 받고 난뒤에 비로소 클로징 된다고 했다.

그 부분이 빠져서 일단 식당 클로징후 에도

내가 받아 주는 것으로 하고 식당은 팔고

나왔다.

참 맘 떠난 식당 다시 갈 때마다 쨘해서

싫은 발걸음에 해결하러 다니는 자체가

스트레스 였다.

그리고 공사를 담당했던 현대건설 고사장님 은 이제 그런일 안한다고 한마디로 자르고 해서 내가 직접 발 벗고 나섰다.

다행히 그 때의 관련 서류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 때 담당했던 엔지니어 와이 소장님에게

부탁해서 파이널 리포터를 작성해서

시청의 담당 인스펙터에게 넣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ㅠㅠ

그 분도 칠년 전에 공사를 검사했던 사람이라

잘 기억하길 바라면서..

소장님도 대게는 리포트만 쓰 주면 끝난다고 했는데 인스펙터가 기억이 안나는지 다시

검사를 받았다

막상 나오니 전에 점검하지 않았던 지하의

배전반위나 배선 부분을 다시 매꾸는 등해서

엄청난(?) 보수 공사를 하고 난 뒤에

통과 되었다

공사를 맡은 분들이 너무 애로사항이 많아

불평사항도 들으면서 부탁 드리고 경비도

꽤 다시 들어가고 두어달 기간 동안 맘이

조마 조마 했다.

심지어 18 년만에 간 한국에의 이 주간

머무는 동안에도 검사 관련해서 전화를 주고

받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인스펙터가 통과하고 전화 해서

확인하라는 부분도 해야 하지만 아직 미루고 있다.

그런데 더 한 것은 내가 당시에 빌딩 퍼미션이 없는 식당의 계약을 파기 할 수도 있었고 또 그랬다면 그 식당은 아마 정상적으로 렌트비 받기 힘들었다.

갈수록 주위에 새로 식당들이 들어서 그렇게 허잡한 설비와 환경 으로는 빈가게가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은 건물주 즉 렌드로드가

누구보다 알고 사실 내게 잘 해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식당을 팔면서 리스 계약서

사인 해주는 조건으로 두달 치 디파짓한

육천불 가량의 금액을 원했다.

내만큼 식당을 운영할 만한 사람이 없어

위험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참 조상이 아일랜드 출신의 열살 정도 많은

노인네 얼굴을 때려주고픈 맘이 들었다.

어떻게 인간적으로 그럴수있을 까 싶었다.

물론 법적으로 소액 재판을 하면 이길수있다고 한다.

하지만 식당을 사는 사람이 또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리스 끝날때 어떤 핑계든 그만큼 갚음은 받는다고 한다.

장사가 안되서 잃을 것이 없다면 할 수가 없지만..

그래서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무섭구나 싶고 갈 사람은 앞을 보고 가야해서

그냥 디파짓 돈을 포기하고 식당을 팔고

분을 삭히면서 또 공사의 마무리를 한 기억을 대충 정리해 보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