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캐나다의 장례식
아침 일찍 스시 츄레이 오다가 있어
좀 일찍 나와 만들었다.
귀찮고 해서 안받으려고 했는데,
장례식에서 쓴다고 사정해서 받아주었다.
그래도 돈이 이백불인데 아쉬운 마당에
안받았다면 어쩔뻔 했어?
그 전에도 어느 장례식장 에 배달을 갔었는데 커다란 교회의 친목실에서
와인도 한잔마시며 많은사람들이 파티에
온 것처럼 화사하게 즐기는 듯 했다.
그래서 첨엔 잘못온 줄 알았다.
심각함이 없이 노골적으로 웃지는 않아도
잔잔한 웃음이 파티홀을 메우고 있었다.
여기 한인 교회에서의 장례식은 물론
한국 에서는 일단 울고 봐야하는 것과
사뭇 대조가 되었다.
서구사람들에겐 죽음은 생활의 일부처럼
받아들이는 듯 해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동네 중간에 조그마한
공동묘지도 많이 있다.
그렇다고 집갔이 싸지도 않는 것을 보면
같은 이유인것 같다.
살아있을때 잘살고 죽는 순간 한점의
미련도 없이 털어 내는 모습이 경이로아
보이기는 한다.
좀 다른 얘기이지만 지인이 토론토 인근의
도시 헤밀톤에서 캐너디언을 상대로
영국식 술집 '펍'을 운영하는데,
어느 단골 손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 전의 여자 친구라면서 나타나서
혹시 그 분이 외상값이 없었는지 갚아줄려고
왔다고 했다.
너무 허름해보이는 (?) 단골 손님이어서
저런 사람이 아는 사람이 있겠냐 싶었는데,
직계 가족도 아닌 전 애인이 나타나서
갚아준다는 말에 캐너디언이 다시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여담이지만,
그 집에 또 다른 단골 손님이 돌아 가셨다.
그 집엔 단골 손남이 잘 돌아가시나 보다.
보통 시골의 술집엔 은퇴한 노인이 여유있게
술을 즐기기 때문인 것같다.
캐나다에서는 젊을 때는 가족을 부양 하느라
여유가 없고 노인들이 연금을 타기 때문에
술뿐만아니라 인생을 아직은 즐길수있다.
경로사상을 따로 얘기하지않아도 소비자 경제의 주체라서 대접받는다.
그 손님의 장례식 얼마뒤에 그 분이 가장
좋아한 곳이 이 곳이었다면서
그 펍을 하루 빌리기를 원했다.
물론 비용은 그 분 들이 다 지불하고
그 날 마시는 술값은 그 분이 계산까지 하고
대신 펍의 벽이며 빈공간에 돌아가신의
어릴적 젊을적 등 살아온 사진들을 벽에
걸어두고 기념을 했다.
참 그 얘길 듣고는 진정한 장례식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어쨌든 캐나다에서는 삶을 살아있을때
즐기고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 죽은이의 입장에서 배려해준다는
느낌이 든다.
"한" 스런 감정이 고여서 가슴을 메이게
하지는 않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