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트럭 운전을 꿈꿔 보았다.

박진양 2013. 8. 4. 14:55

 

지난 일년 바쁜 식당일 중에 틈틈히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요 근래는 정말 바빠서 쓸 틈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친구나 여기 캐나다의 지인들에게

안부를 대신했는데 요즘 왜 안쓰냐고 해서 쓰고 싶은데

바쁘기도 하지만 선뜻 엄두가 잘 나질 않아 차일 피일 미루었다.

무엇보다 매일 형편이 펴지지않는 찌질한 현실 얘기를

적을려니 신이 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일년 그리고 특히 두어달 동안 참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해보니 바로 이런 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나역시 다른 사람들을 보며 돈이 다가 아니라고 말할수 있듯이 내 힘든 인생살이 역시 큰 돈 못벌어도 노력하는 자체를 인정해야겠다.

그래도 십칠년 동안 살면서 아직도 허덕거리는 상황이

사실 짜증이 났다.

이 식당에서 좀 형편피나 했는데 바로 옆에 스시 부페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난 뒤 힘들면서 식당하는 자체가

회의가 들었다.

이런 것이 슬럼프 인지.

그래서 이 기회에 쟙을 바꿔 볼까 하는 맘이 들고는

트럭 운전을 해보고 싶었다.

신경도 덜 쓰고 핸들만 잡고 잠만 안자고 있으면

돈이 딱딱 나오는 쟙이 부러웠다.

매일 반복되는 좁은 주방 생활에서 탈피해서

갈때 까지 가보고 싶은 애 같은 맘도 들고.

이 넓은 나라에 왔는데 미국의 대륙을 횡단해서 대서양도

보고 태평양도 지나가 보며 남 쪽 플로리다 까지

달려보고 싶었다.

가끔식의 여행이 아니라 일상의 쟙으로서 질리때 까지

해보고 싶었다.

주위의 지인들이 트럭 운전을 많이 하는 분들이 있어

문의도 해 보았다.

대체적으로 한 번 해볼만 하다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추렐러를 운전하는 " Z" 면허는 그냥 트럭 면허와는

차이가 많았다.

싼 곳은 학원에서 이천불에 한다는 곳도 있지만

주위의 지인이 햄버 칼리지에 있는 코스를 수료하는 것이

쟙을 찾기가 낮다고 했다.

아무래도 신빙성이 있는지 기업체에서 채용을 많이 한다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인지 수업료가 파트 타임으로 할 경우 도로

연수 포함 두달 과정에 팔천불 정도 했다.

그리고 면허 시험을 보고 나서 초보자는 채용을 꺼리기

때문에 괠프에 있는 트럭 회사에서 연수를 잘 시킨다고

하고 첫해에는 아무래도 수입이 이천불 넘기 힘들고

다음해가 되어야 삼사천불 이고,

경력도 쌓고 하루 운전 시간을 길게 하면 한달에 칠팔천불

수입은 된다고 했다.

물론 십만불 정도 투자해서 트럭을 사면 만불 이상

수입도 가능한데, 감가 상각등을 고려하면 비슷한 것같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트럭을 사면 세금을 비용으로 처리

할 수있는 점에서 잇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기회에 은행 비용을 줄일려고

집을 내놓기로 했다.

학원비도 충당해야 하고.

그리고 내 대신할 쉐프를 채용할려고 인터뷰도 보고

직접 시켜도 보았는데 기존의 있는 직원보다

기술적으로 나은 쉐프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가능성을 보고 챠용한 직원이 영 따라 주지를

못했다.

식당에 맘이 떠난 김에 왠만하면 뛰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식당이 뭐가 있는지 믿고 따라주는

기존의 직원 한 분 한 분이 태연히 자리를 지켜주는 것에

세삼 고맙고 그런 눈치 조차 없는 생면 부지의 주방장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어 다시 한 번 칼을 잡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 판단에도 따라 주는 아내에게

애 들에게 최선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권태의

때가 씻겨 나가는 듯했다.

집도 팔려고 내놓았는데 번거러운 쇼잉 과정을 가족

모두가 잘 참고 두 번 씩이나 오퍼가 성립되고 최종

서류 과정에서 계약이 깨졌다.

그 동안에 집을 렌트 할려고 알아 보니 갈 만한 집도

별로 없고, 지금 사는 우리집 만한 곳도 없는데

헐 값에 팔기엔 아까웠다.

그렇게 대책없이 밀어 붙이기엔 이젠 나이가 들었는지.

그래도 직업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보니

지금 하는 일이 덜 답답했다.

그래도 수입 면에서는 사실 트럭 운전 보다야 식당이

낫다는 현실을 무시 할 수없고.

다행이 최근에 토론토의 불경기 속에서 손님의 발 길이

다시 잦아지고 있다.

집 팔고 좀 덜 쪼들리게 생활할려 했지만,

못 팔아도 이 순간을 넘기면 좋게 생각하면 집이

하나 생긴다고 여기니 다시 나를 달리게 한다.

요즘 들어 바쁜 식당에도 작년 이 맘 때에 비해 인건비가 한 주에 천불 가까이 적게 나간다.

각 개인에게 나가는 주급은 올랐는데도 줄어든

그 만큼 내가 많이 뛰고 있다.

혼자 스시바에서 일하는 것이 엄두 자체가 안났는데.

오다도 오다이지만 준비 과정과 뒷 마무리까지

하는 끝도 없는 노동과 뒷 치닷거리는 엄두가 나질 않았지만

막상 닥치니 또 해내게 된다.

그래 집 하나 떨어 지는 것이 쉽겠냐고,

허리가 아플 때마다 위로한다.

작년에 어머님 오셔서 하시던 말 " 야 야, 돈 벌 모퉁이가 죽을 모퉁이다" 고 하셨는데, 그래 그 모퉁이에 머리

한번 박아 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갈 때 까지 가보는 거지 뭐.!

남 한테 잔소리 안하니 에너지도 축적되고,

남 들하는 고생을 이제야 같이 해보는 것이라는 동질감이

나를 위로한다.

사실은 이제야 철드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