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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1. 개업

박진양 2012. 7. 11. 05:56

 

 

 

 

이민와서 첫 해에 칠만 불 정도 지출 되었다.

캐나다에서 돈은 참 헤퍼다.

일년 렌트비로 만오첨불 그냥 날라가고

차 리스 등으로 만 이천불등 별 쓸 것없이

눈 뜨고 코베어 가 듯 돈을 빼앗긴 듯 소비되는

것이 캐나다이다.

첨부터 컨셉을 잘못잡았다.

공부는 뭔 공부! 생활전선에 빨리 뛰어 들었어야 했다.

공부할려면 면밀히 현실적 검토가 필요했다.

졸업후 바로 쟙이랑 연결되지않으면 피하는 것

이 좋다..

이리저리 쓰고 막상 비즈니스 할려니

자금이 타이트 했다.

한국에 얼마 놔둔돈을 송금할려니 아엠에프(IMF)인한 환율 하락때문에 절반으로 줄었다.

돈은 반으로 까였지만 배 이상 가치로 쓰기로

했다.

스시비와 주방을 꾸미는데 삼만 불 정도

들었다. 주방은 조그만 싱크대와 작업 다이

냉장고 하나 겨우 들어 갔다.

싱크대는 작아도 위생법상 세칸 짜리여야만 했다.

성당의 신용조합에서 삼만불을 대출 받아

운영 자금으로 썼다.

샘 아저씨는 기술을 내가 자본을 백 프로 대서

이렇게 샡업 했다.

오픈 첫 날 서둘러 준비해도 저녁 무렵에

음식을 팔 수있었는데 손님이 먹을 까 싶었는데 오백불 정도 매상을 기록 했다.

첫 날의 매상이 신기해서 집에서 혜진이 엄마와 돈을 세고 또 세어 봤다.

식당은 첨 오픈때는 팀웍이 안맞아 무척

힘들다. 그래서 노련한 요리사는 오픈 집은

피하고 주급을 더 요구하기도 한다.

오픈 집 같이 일해 주는 스텝은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이어서 잘 대우 해주어야 한다.

다행히 홀 스텝은 공동으로 운영해서 이미

숙련된 웨이츄레스 스텝이 있어 혼란이

적었다.

웨이츄레스 스텝은 버스 보이 라고 그릇만 치우고 호스트는 안내를 하는데 웨이츄레스 다 포함해서 이십오명 정도가 되었다. 홀이 이백석 정도 되어 바쁠 때는 열명이 있었도 일손이 딸렸다.

당시에는 몰이 초창기라 썰렁했는데

몇 달 안가 붐비기 시작 했고 우리 식당도

같이 발전해서 육만불 정도에 셑업해서

일 년뒤에는 이 십만불 되는 가게로 성공했다.

좁은 토론토 사회에서 대박 이니 성공적인

동업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소문은 실제 보다 포장도 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