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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영일만의 친구 그리고 윈드서핑

박진양 2012. 12. 8. 13:12

 

 

 

 

 

 

 

 

 

 

 

 

 

포항제철내 스쿠버 팀이 여럿 있었고 가끔은 연합회 형식으로 가끔 모여 지역 봉사나 대외 활동등에 대해

토의도 하곤 했다.

그 중 파도 팀을 이끄는 성식이형은 끼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운동도 잘하고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는지는

잘 몰라도 원하는 세계를 나름대로 추구하고 있었다.

바다에 대해 해박하고 열정이 있었고 요트나

윈드서핑등에도 많이 알고 있었고 오래되었지만 탈수는

있는 장비가 있어서 어느날 관심있는 몇 명이 모여 강습회

를 헀다.

그 중에는 포철 연관단지의 회사에 다니던 한국해양소년단 단장 츌신도 있었고 강원산업 장 동준씨도 있었다.

그리고 내 절친, 그즈음의 바늘과 실, 차 봉준씨도 함께 했다.

며칠 해보고 조금 익숙하니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보드가 두 대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타고 나가면 물 속에서 차례를 기다려

탔는데 물 속에서 목만 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리고 들어오는 데로 타고 나가보면 방향조절을 잘 못해서 내 뜻과 상관없이 오래 헤매다 들어오면 기다리던

분들한테 눈총을 맞았다.

언젠가 차형이랑 술을 한잔 하다가 형이 배를 사면 내가

차를 산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차형이 큰 맘먹고 윈드서핑 기종중에 메이커 있는 오스트리아제 에프투를 중고로 샀다.

새 것이 팔팔년 당시에 이백오십원 안팎을 했고 중고는

그 때 백만원을 주고 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약속을 지키지않을 수없었다.

그리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보면 두사람의 장비를 오토바이에 싣고 두사람 타고가다보면 좀 무리가 되었고

바닷가 특히 도구지나 대보등대쪽으로 가면 비포장 도로라 오토바이도 몇 번 쳐박은 경험이 있어 안전한

이송수단인 자동차가 부러웠다.

그리고 윈드서핑을 이송할려 하면 차가 필수였다.

그래서 어느 토요일 서울 장안평에 가서 중고 포니투를

하나 사서 몰고 내려 왔다.

당시에는 아직 차가 많지 않아 눈치가 보여 부서앞에

주차할 때는 멀리 대놓고 걸어 다녔다.

그런데 나 또한 배가 없으니 서로가 교대로 탄다는 것도

말이 안되었다.

바람이 늘 부는 것도 아니고 바람불 때 같이 타야 맛이다.

팔팔 올림픽 당시에 한강에서 윈드서핑 퍼레이드를

했는데 보급형으로 들려 온 것을 염가에 팔았다.

성식이 형을 통해 오륙십 만원을 주고 샀다.

그렇게 구입하고 보니 매일 처럼 타고 다녔다.

새벽에 나가서도 타고 퇴근후에 해 떨어질 때까지 쨤을

내어 타고 바다에서의 해방감이 이루 말할수없이

호쾌했고 운동도 많이 되었다.

특히 윈드서핑을 하다보면 발란스 감각이 좋아지고

허리힘이 강해지는 것 같다.

물론 붐을 잡고 있는 팔뚝은 말할 것도 없고.

포항 앞바다의 영인만은 생각보다 아주 넓었다.

윈드서핑을 즐기기엔 천혜의 자연 조건인 셈이었다.

북부해수욕장에서 방향을 잡아 그대로 붐을 유지하고

있으면 포항제철 코크스 공장까지 십분도 채 안 걸렸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갔다가 바다에서 보면 포항의 해변과

집이 아득하니 보인다.

그동안의 해방감과 수면과 접한 스피드감은 이루 말할수

없이 상쾌했다.

윈드 서핑은 파도를 타는 보드의 장점과 바람을 세일(돛)로

받아 파도를 차고 나가는 요트의 장점을 조합해서

만들어졌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육십팔년도 정도에 캘리포니아에서 서핑선수와 나사의 우주항공학자가 만나

서핑과 요트의 장점을 살려 만들어진 비교적 역사가

짧은 첨단 스포츠라고도 말할 수있다.

일본은 칠십이년도 정도에 도입되었고,

한국은 칠십팔년도 정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서핑과 달리 삼백육십도 모든 방향으로 다 갈 수도

있고 서핑처럼 파도를 타면서도 바람을 이용해서

파도를 갈라놓기도 거스러기도 하는 아주 박진감이

넘치는 스포츠같다.

같은 백킬로라도 차를 탈때와 오토바이를 탈때가 틀린데

수면에 붙은 상태에서 질주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엄청난 스피드감이 느껴진다.

바람을 잘 받을 때는 보드 뒤에 붙은 스케그라고 그 부분만

살짝 물에 접하고 보드 전체가 물위에 떠있는 느낌이고

순간 순간 떠기도 한다.

바람이 셀때는 바람을 이용해서 점핑도 가능하다.

바다에서 보니 바람이 대개 해뜰 무렾에 불다가 조용하고

다시 한 낮에 어느 순간에 불었

다가 잠잠했다가 저녁

무렾이 되면 또 불었다.

물론 폭풍 주의보가 내리면 늘 불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새벽부터 바닷가에 나갔다가 바람이

불 때 타고 조용할 때는 성식이형 샾에서 윈드서핑에

대한 비디오를 보며 기술을 눈 여겨 보았다.

짜장면 배달시켜 놓았다가도 바람이 불어오면 배부터 먼저

팄다가 바닷물이 허옇게 말라붙은 초췌한 몰골로 식은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삼십이번인가의 전화번호를 누르면

일기예보를 들을수있었다.

" 파고 삼에서 사-아 메터-, 풍속 십에서 십이-미터,

동해안 해쌍에 폭풍 주의보를 발효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모였다.

보드를 셑팅할 때 바람이 너무 세서 모래가 얼굴을 때리기도 하고 세일이 날라가서 잡으러 뛰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사미터 넘는 파도가 벽처럼 막아서 질리기도

했다.

그래도 바람한번 잘 받으면 치고 나갔다.

파도의 골이 깊고 워낙 넓어 어떤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위를 올라가는 느낌으로 파도위를 한참 올라가다가

점핑을 해서 내 기분에는 십미터를 날라서 다시 철퍼득하며 착지했다.

착지인지 착수인지는 몰라도 느낌은 그랬다.

조금만 발란스를 놓치면 오미터 넘는 세일을 넘어 한 참을 날라가다 가속도때문에 수면위를 떼굴 떼굴

구르다가 물 속에 박혔다.

그래도 물이라 모든 것을 다 받아줄것같아 편안했다.

어떤때는 방파제 주위에서 넘어져서 보드가

방파제 바위 쪽으로 가서 보드를 보호할려 가슴으로

받다 갈비뼈를 찍혀 한 참을 고생도 했다.

보드가 깨지면 포항제철에 정화조를 납품하는 사장님께

부탁해서 수리를 하다 나중에는 귀찮은지 재료를 주면서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웬만한 보드 수리는 직접 다하고 나중에는 마스터가 부러지면 마스트 까지 수리할 정도가 되었다.

겨울의 새벽에는 얼어붙어있는 수영복과 윁 슈트를 입으면 정신이 번쩍 나고 등짝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한기도 느끼면서 타곤했다.

한 번은 겨울인데 경주 보문 단지에 차형이랑 둘이서

타러갔다가 한참 가운데 나갔을 때 바람이 없어져서

저어서 나오는 데 보드는 살짝얼어 미끄러워서 애를

먹었는 데 정작 보드를 운반하는 데 애를 더 먹었다.

조선 호텔뒤 숲 을 통해 무장공비처럼 슈트를 입고

둘이서 하나씩 운반하며 나중에 돌아올 때 한참을

웃었다.

그때만 해도 윈드서핑 전용 슈트가 없어 스킨 다이빙용

슈트의 안쪽만 입고 겨울에는 죽도 시장에서 산 노란 우의

를 입었다.

그 차림으로 겨울의 물 속에 빠지면 한기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래도 좋아서 낄낄대며 끝나고 저녁에 술 한잔 하면

호쾌한 분위기에 말 술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