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포항 고룡산악회
고룡산악회만큼 회원간의 정도 많고 융화가.잘 되는 산악회는 드물었던 것 같다.
나중에 산악활동을 하면서 서울이나 부산등 많은 산악회도 많이 보았지만 고룡산악회만한 분위기 좋은
산악회는 거의 보지 못했다.
보통 클라이밍만 전문으로 하는 산악회, 하이킹만 하는
산악회, 그리고 대학 산악회등이 있는 데 고룡 산악회는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클라이머와 일반 하이킹도 즐기는
회원들이 조화를 이룬 대형 산악회이고 전통이 있는
산악회였다.
물론 지금도 히말리야에 등반을 가고 꾸준히 활동을
하는 것같다.
그리고 히말리야에 가는 클라이머는 본인이 좋아서
간다지만 뒤에서 뒷바라지 해주는 일반회원의 헌신이
산악회에 힘을 실어주고 그 분들의 노고가 시간이 지나
생각해도 참 고마운 것같다.
아마 그것이 고룡의 힘이었던 것같다.
그리고 당시에는 만년회장님으로 포철에 근무하셨던
박 영환 선배님께서 희생을 많이 하셨던 것같다.
박회장님은 산악회 노래도 작사 작곡 하셨고
매주 목요일 모임에 거의 참석하시고 산행이나 각 행사에
참석하실려면 지금 생각해 보면 사생활이 없었을 것같다.
산악회 멤버는 역시 주축은 포항제철 직원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포항시의 다양한 출신들이 조화를 이루었다.
시청의 각 부서에서 오신 분 그리고 보건소 등의 관공서와
사업 하시는 선배님도 많이 계셨고 포항있다가 서울등
타지로 갔다가 팔월달에 있는 산신제때는 다 모여서
끈끈한 정을 확인했다.
그래서 말 술은 필수였던 것같다.
그 많은 행사나 산행 때 술이 넘쳐나도 잡음이 없었던 것을
보면 기강이 잘 잡혔고 선후배 사이의 정이 깊었다.
그리고 원정갈 때 물론 본인이 부담을 하지만 그래도
산악회에서 지원되는 공동장비나 일부 경비도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필요한 기금은 회비도 있었고
매 달 한번 씩 가는 정기 가이드 산행때 이익금도 적치되었다.
당시에 버스 하나 빌려 갈때 회원들 삼십칠명이 손익분기점이었는 데 그 이상 많이 갈수록 좋아서
회원들 모은 것도 일 이었다.
회원 모을 때 보건소 근무했던 박 예연 씨가 은근히 발이
넓어 좌석을 많이 채워 주었다.
그리고 산행 가기전에 처음 가는 곳은 답사도 필요해서
산악회 동기 김 찬씨와 홍 성춘씨, 권 순화씨가 수고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김 찬씨는 이민와서 미국 엘에이 산다는 데 한번 만나고 싶다.
권 순화씨는 정형외과 간호원으로 있어서 암벽 등반하다
다칠 때는 간단한 몇 바늘은 직접 꿰메주기도 하고
약품 지원을 많이 받았다.
산악회 제일 대세는 기건이 형인데 작은키에 포스가 있고
엄청난 주량으로 포항의 마당발이셨다.
역시 포철 다니시는 데 그 전에 암벽 등반 할때 전설의
발란스로 유명하셨고 이천년도에는 히말리야에서
어렵기로 유명한 낭가파르밧 등반대장으로 등반을 성공
시켰다.
그리고 여성부에서는 만년 부회장님 보건소에서 계셨던
정말 좋았던 누님이 계셨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데 이래서 이만큼 기억이라도 될때
한번 써 보는 것같다.
어떤 때 선후배님들과 술마시다가 밤 늦게 찾아 가도
반갖게 맞으시고 나도 종종 인생 상담을 했을만큼
포스가 있는 여장부이셨는 데도 의외로 참 여성스러우셨다.
그리고 여성부를 지킨 포스라면 박 달렴 선배님이 떠오른다.
혼자 계시면서도 늘 밝게 후배들을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때로는 나무라기도 하면서 술 자리에서 큰 소리로 분위기를 살렸다.
인생 상담 필요할 때 조용히 찾아가면 친 고모처럼 같이
고민을 나누었다.
그리고 만년 부회장 선남이 형이 있었는 데 기건이형이랑
포철의 같은 부서에 근무하시면서 자근 자근 후배들에게
참 잘 대해 주신 너무나 호인이셨다.
구십년도인가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형수님이랑 산악회원으로 있다 결혼하셔서 형수님들도
회원들을 늘 따뜻히 대해 주셔서 이 삼년 전에 아들 동현이
가 왔을 때 남 같지 않고 친 조카이상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식사도 자주 했고 동현이 한국가기전에 미국 동부
여행을 계획했다가 동현이 비자 사정으로 나이아 가라
인근에 다녀왔는데 폭포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아빠 얘기도 많이 들려주면서 이별을
아쉬워 했다.
그 때 나는 보경사의 연산폭포에서 쾌활하게 웃던 선배님
생각에 감정이 올러와 얘기하면서 눈물이 맺히곤 했다.
동현이도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어 아빠 얘기 들려 주는 것을 좋아 했다.
그리고 포항 코오롱 스포츠 센타를 운영하시던 완도형을
빼 놓을 수는 없는 것같다.
그 전에 포철에서 나와 사업을 하신 선배님은 우리 산악회
영원한 물주였다.
지금 생각하면 코오롱에 가서 조금 더 쇼핑을 해 주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남규형과 선남이형이랑 동갑인 상배형이 생각난다.
상배형도 포철에 근무하시면서 살빼기 위해 산행을 시작했는데 몇 년후
정말 날씬해졌다.
술마시면 영웅호걸이 따로 없고 까칠한 듯한 말투와 달리 속이 정말 깊고
산악회를 진심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유머가 넘치고 성격이 시원해서 모든 회원들이 다 좋아한 것같다.
회원들에 대해 다 쓸려면 끝이 없을 것 같은데 모든 회원들에게
피를 나눈 형제같은 끈끈한 정을 느끼고 있다.
이민와서 잘 되면 기금도 보낼 생각도 가졌는 데 나 하나
살기도 급급해 연락도 못해 보았다.
혹시라도 고룡산악회에 있는 자녀 분들이 어학연수라도
오면 잘 가이드는 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