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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천칠년도 하얀 겨울

박진양 2012. 11. 22. 06:41

 

 

 

 

 

이천 칠년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그 해 겨울에는 눈도 많이 왔다는 데 조금만 더 내렸다면

기록을 경신할 뻔 했었다고 한다.

눈이 하얗게 온 거리를 덮고 나면 손님의 발길 마저 끊긴

식당이 산사의 절간같은 고요가 내 마음을 하얗게

만들었다.

그리고 식당뒤의 파킹장과 진입로에 눈을 치우느라 하루

종일 눈삽으로 노동하느라 기진 맥진했다.

정말 징그러운 눈이었다.

누군가가 공군 출신이 있어 활주로에 있는 눈을 징그럽게

치웠다고 하는 데 어쨋든 군대서야 눈치우고 나면

밥이라도 주지만 눈 때문에 가뜩이나 없는 손님의 발길이

없어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 지 머리가 텅빈 느낌이다.

우리식당 한집 건너 홍콩계 중국여자들이 일본 화장품

쉬세도 화장품 대리점을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오픈을

했는 데 파킹장을 같이 사용해서 그 사람 퇴근 할때

눈도 치워 주고 차도 끌어내주곤 했는 데 어느날

자기차 옆에 우리 직원이 차를 주차했다며 쌀쌀맞게

차빼라는 얘기에 참 섭섭했다.

그 여자들이 조금만 아쉬우면 여우처럼 살랑대는 것이

참 속보였는 데 그 사건 이후에 싹 밥맛이었다.

어쨋든 그 화장품 대리점도 두 해 겨울을 못지나고

문을 닫고 손 털고 나갔다.

그리고 일년 정도 비었다가 실내 장식품을 판매한는

가게가 들어섰는 데 두 해 겨울을 앞두고 문을 닫고

아직도 가게가 비어 있다.

우리 식당 두집 건너 윗집도 이천 필년 당시 비슷한 시기에

오픈을 해서 비즈니스를 했다.

하쉬라고 브랰퍼스트등을 고급스럽게 하는 가게였는 데

오픈 할 때는 꽤 잘되서 그 주인이 육십 다되가는 백인이

넉살도 좋고 해서 우리 가게에 와서 자랑도 많이 하고

눈이 올땐 눈도 같이 치운 군대 동기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가게는 나중에 딤섬도 메뉴에 넣고 해서

우리 손님 중에 왜 그 가게에 딤섬이 있는 줄 모르겠다면서

혀를 차곤 했고 작년에는 생 요구 아이스크림도 취급해서

사주곤 했는 데 지난 봄에 문을 닫고는 육개월 정도 비어

있다가 모로코 음식점이 얼마전에 오픈을 했다.

그리고 다시 우리 가게 밑으로 다섯집 건너 이천 칠년도에

역시 인디안 레스토랑이 오픈을 했었다.

어떤 날 그 집에 손님이 많은 날 그 집앞을 지나가보도

했는 데 그 역시 두 해 겨울을 못 보내고 문을 닫고 나갔다.

그리고 다시 인디언 레스토랑이 들어서서 우리도 가서

먹어보곤 했는 데 맛은 있는 데 가격이 좀 비싼 느낌이

들더니 그 역시 두 해 겨울을 못보내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 그 식당 자리에 올유캔잍 레스토랑이

들어서니 우리 식당이 흔들렸다.

참 사람이 살고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인지,

특히 오픈이 너무 쉬운 캐나다에서는 좀 된다고 하면

치고 들어오는 것 같다.

매년 일정 인구로 이민을 들어오다보니 새로운 물결과

아이디어가 넘쳐 나고 헝가리로 무장된 굴로오는 돌을

막아낼려는 면 마음 내려놓을 틈이 없는 것이 토론토

생활 같다.

이천 칠년도 어느날은 눈이 너무 심하게 내려 버스마저

끊겨 그 때 일호 차가 닛산의 엑스트라는 튼튼한 사륜구동차라 대니 집까지 가서 픽업해서 노스욕의부엉이라는 이십사시간 한식집에 가서 감자탕 한 그릇씩을 먹고는 그 날도 정말 열심히 하루 종일 눈을

치웠다.

그리고 진입로가 포장이 안되서 차가 빠져 나오기도 힘들었고 쓰레기 버릴려 나갈때는 무슨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스펙타를했고 장엄한 마음과 복장이 필요할 정도로

진지했었다.

그 때 딜리버리 하는 이 호차는 혼다의 시빅이었는 데

삼년을 더 버티고 이천 십년도에 도요타의 라버포로

바꾸었다.

너무 크도 진입로가 좁아 접촉사고가 많이 나서 적당한

크기의 사륜 구동차로 바꾸었다.

그 때 시빅으로 딜리버리 하면서 눈에 빠져 차도 많이

끌어냈고 빙판에 미끄러져 돌기도 하는 등 아찔한 순간

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몇 군데 찌그러져 나중에 차 바꿀때는 제값을 받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 해 하얀 겨울을 함께 몸부림 친 빨간 시빅이

생각난다.

그 징그런 비포장 진입로도 일년 반 전에 포장도 하고

또 밑에 열선을 깔아 눈이 녹도록 만들어 얼마사이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 긴 겨울을 지내고, 캐나다에서는 사월에도 눈이 가끔식

와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오 육월 정도 되어서 매상이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올라

한 시름을 놓았다.

그 즈음 해서 동안 버티느라 적자를 매꾸느라고 다시

영 쉐퍼드에 있는 스프링 가든의 콘도를 팔고 다시

아파트를 구해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