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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기훈과 유태인 학교 친구

박진양 2012. 11. 10. 06:48

기훈이가 학교 다닐 때 미식 축구팀 주장을 맡고 오픈 된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았었다.

그 친구들중에서 늘 집에 놀러 와서 밥도 먹고 가고 나중에는 라면도 끓여 먹고 김치도 잘 먹는 캐너디언 친구가 있었다.

기훈이 집에서 가게를 해서 부모님이 안계실 때도 있어도

알아서 음식도 같이 해먹고 대학에 가서도 종종 놀러와서도 밥은 꼭 챙겨 먹고 가서 형편이 어려운 애인가 보다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대학도 졸업후 십 면년만에 우연히 만나서 명함을

주면서 그 명함에 있는 건물의 레스토랑에서 보자서

해서 가 봤다고 했다.

그런데 그 레스토랑은 일반 레스토랑과 달리 회원제로

운영하는 프라이빗 레스토랑으로 시내에 있는 그 건물의

회사에 소속된 것이라고 했다.

물론 당연히 맛도 있고 돈으로 쉽게 따질 수도 없는 분위기

였다는 데 그 친구 얘기가 그 건물 전체가 본인 것이고

그 회사의 시이오라고 했다.

알고 보니 유태인 계통의 그 친구는 집이 엄청나게 부자

였는 데 혼자 힘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해야 유산을

물려 주고 그렇지 않으면 한푼도 받지 못한다는 집안의

엄명이 있어 학비와 먹는 것 까지 본인이 해결했어야

했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면 그 위의 형에게 유산을 물려 주었는 데

준비가 덜 되었지 본인 성향인지는 몰라도 이혼도 몇 번해서 재산도 거들내고 마약도 하는 등 떠 돌다

나이가 삼십 전후에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가혹한 훈련을 그 친구에게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그 때 학창 시절 도와주어서 너무 고맙다면서

꼭 신세를 갚겠다고 필요한것이 있으면 얘기하라면서

명함을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살다보니 지금 장사하는 곳도 유태인이

많고 또 부자도 많은 곳이다.

그리고 그 전에 했던 알톤 타워도 그 일대가 십년 전에는

부촌이라 손님 중에 꽤 부자도 많았는 데 대개는 엄청난

부에 비해 소박하고 자식들에게는 꼭 아르바이트도 시키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여기 이 곳 레스토랑을 해 보면 애들에게 엄한 태도

를 많이 보게 된다.

대여살 꼬마에게도 꼭 탱큐, 등 인사말을 붙이게 하고

심지어 뛰지말라 등 잔소리를 눈에 힘 주면서 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 서양사회의 기본 정신이 노블리스 오블레스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부자된 입장을 장기적으로 지키기위해서는

사회의 상식과 통념, 예절을 익히게 하면서 없는 사람의

입장을 자극하지않는 현명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다고 하지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있더라도 없는 위치에서 만큼

생활력을 갖추도록 교육을 시켜 서인지 흥청 망청 쓰는

분위기는 아닌것 같다.

그래서인지 부자는 부자대로 인정하고 그런가 보다

정도로 넘어가지 한국 연속극에 늘 나오는 재벌 이세

얘기는 그렇게 일반적이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사회를 지금 외국에서 보면 너무 잘살아서

성경에 나오는 부자를 바라보는 가난한 나사로 같은 위치

같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싼 물가를 보면 없는 사람의 저임금이

바탕되었고 언젠가 넘어야 할 벽이고 또 현명한 재 분배가

갈등없이 천천히 꾸준히 진행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지않을까

싶다.

그래서 부자들도 애들에게 똑같이 군대도 가야하고

애들에게 돈 먼저 건강한 상식과 정신을 먼저 물려줄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않을 까싶다.

어쨋든 기훈이 친구 얘기만 끝이 없이 나올 것 같다.

십육년전에 이민와서도 기훈이를 중심으로 친구들이

참 많이 모였다.

그 때 매주 월요일 인가 저녁에 고등학교 실내 체육관을 빌려 같이 운동을 했다.

지금도 요즘 이민을 많이 온다고 해도 학교 체육관을

빌렸다는 얘기를 듣지 못핸 것을 보면 기훈이 덕분에

앞서 갔던 것 같다.

기훈이가 야간에 고등학교의 체육관을 무료로 빌려서

일주일에 한번 씩 같이 모여 족구도 하고 농구도 했었다.

그러다 나중에 어느날 토론토의 유명한 아마츄어팀이랑

친선 시합을 해서 이겼는 데 그 팀이 믿을 수없어 다음에

도전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 때 우리 팀중에 국가대표 농구선수도 지냈고

기아 농구팀에 코치를 했던 또래 친구도 있었고

기훈이도 농구를 잘했다.

그 때 운동후 열정이 식지않아 술을 같이 마시면 끝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 와이프들한테 눈총을 좀 받기도 했지만

지금보니 그 것또한 각자의 추억이 되어 가끔식

만나면 그 시절 얘기를 한다.

이민와서 뭘해야 할지 불안했지만 같이 운동하고 술한잔

하며 떠들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