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천 칠년 팔월 에브뉴에 있는 식당 오픈
그렇게 어렵고 긴 시간이 지나서 팔월 말에 오픈을
할 수는 있었다.
정말 어떤 때는 오픈도 못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식당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숨 지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상처뿐인 영광이라야 할지.
내 입장에서야 그렇게 어렵게 오픈을 해서 소중했지만
남들의 시야에서야 그저 동네에서 조그만 식당 하나가
선 보였을 뿐이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손님이 너무 깨끗하고 멋있다며
칭찬을 해주고 또 어떤 손님은 바닥의 오크나무가 너무
깨끗해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기도 했다.
이 곳 사람들은 침실에도 신발을 신고 들어 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인정같아 웃으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그리고 어느날 꼭 한국사람처럼 빤지러니 머리회전 빠를
것 같은 캐너디언 키 작은 친구가 하는 말 " 정말 당신
시간이 가도 똑 같이 이렇게 음식을 만들면 부자 될거라는
말이 위로가 많이 되었는 데 늘 까칠하게 한 표정 하면서
꾸준한 단골이 되었다.
하지만 바쁠때 바쁘지 항상 바쁜 것은 아니었다.
매상은 그 전에 식당이 삼 사천불 되었다니 오픈해서
오륙천불 되었으니 나쁘지는 않았지만 수비형 비즈니스와
공격형이 틀렸다.
그 전에 매상이 적어도 장비도 별로 어뵤고 직원도 없어
제반 경비가 적었지만 공격형으로 전환한 이상 골 득실률로 이기기 위한 손익 분기점을 주 매상 만이천불로
잡았었다.
하지만 맛있다고 말하는 손님에 비해 매상이 금방 눈에
보이게 오르지는 않았다.
나중에 보니 캐너디언 대상으로는 웬만해서 금방 차이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모스코바의 큰 한 식당에서 일하셨다는 주방 아주
머님은 실력 발휘를 못하고 밥통을 안고 졸고 계시는 아주 평화스런 식당이었다.
하루에 걸핏하면 이 삼백불 씩의 매상이니 별로 할 일도
청소할 것도 없어 자꾸 눈 마주치기가 미안해서 지하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메뉴도 새로 짜 보고 책도 읽고
빠삐용에 나오는 스티브 멕퀸처럼 팔굽혀 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머리가 돌 것같은 느낌이어서 될 수있으면 단순할려고
노력했었다.
젊어서 엄 앵란씨가 신 성일씨 때문에 속 썩어서 무척이나
힘들었다는데 힘든 시간에는 잘먹고 잘자는 것이상 없다는 말이 위로가 많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 오륙 개월 동안은 매상이 적어 집에 생활도
해야하고 해서 한 달에 만 불씩은 적자가 나서 매꾸고
다시 팔개월 정도는 오천불 씩 적자가 났다.
그 돈은 집 팔아서 매꾸고 해서 버텨 나가고 그래도 안되면
카드로 돌려 막고 카톨릭 신용 조합에서 신용 대출을
삼만 육천불 융자를 냈고 그 돈도 내년 오월 이면 다 갚는다.
매상이 없어도 재료값에 투자해서 생선이 안 좋으면
버리고 안 좋기 전에 될 수있으면 먹다 보니 건강은
좋아진 것같았다.
그리고 매뉴가 처음 오픈하고 보니 동네 컨셒과 틀린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삼개월 지나서 한번 육개월 다시
지나서 한번 두번을 바꾸었다.
테이크 아웃 매뉴도 인쇄하기 때문에 한번 바꿀때마다
오천블 씩은 들었다.
그 것도 다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가서원어민 영어선생을 하는 두철이와 중국계 친구들을
고용해 주택 지역에 다시 찌라시를 뿌렸다.
나도 틈나는 대로 근처 호텔이나 병원등에 가서 명함도
주고 찌라시 다발도 놓고 가고 때로는 선물권을 줘서
식당에 오도록 유도를 했다.
그냥 몸부림을 칠 수있는 데 까지 쳤다는 게 맞는 말같다.
그 때 친구들이 때로는 돈을 빌려줘서 버텨 나가기도 했었다.
오픈 당시에 유메이 사장님이 먼저 필요하면 쓰라면서 만 불을 빌려 주셨는 데 한 삼년 전에 다 갚았다.
그리고 또 한참 한계에 부딪힌 오픈후 일년 쯤 지나서인가
오이시이 스시를 하시는 최 현득 선배님이 어느날
전화가 와서 가보니 티디 뱅크의 라인 레딧 체크를 주시면서 어려울 때 쓰라면서 만불을 먼저 빌려 주셔서
직접 도움도 많이 되었고 맘 써주신게 너무 고마웠다.
그 또한 작년에 다 갚았다.
그 때 서드베리의 서니네가 힘들때 팔 천불 빌려주기도
하고 제 경모가 오천불을 빌려주기도 하고 광오씨가
회사 기금으로 팔천 불을 빌려주고 빅스시 사장이
비상금 삼천불을 빌려 줬었다.
다 삼 년전에 갚았는데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꽃도
못 피워 보고 시들었을 것 같다.
식당 살때 칠만불 공사하느라 십만불 가량 융자를
받았고 공사하는 동안 렌트비 내느라 이만 오천불
그리고 현금으로 오만불 따로 더 들어가고
그뒤에 일년 반 넘는 동안 버텨나가느라 십만불은 쓴 것
깉은데 생존하느라 그 식당에 삽십만불 이상 들어갔다면
믿을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런 것은 해본 사람만이 이해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 돈으로 잘 되는 식당을 샀다면 훨씬 좋은결과를 얻었을뻔 했다.
그래서 셑업이 어렵다고 얘기들 한다.
그리고 일만 잘한다고 잘 되는 게 비즈니스의 세계가 아닌 것 같다.
말도 안되는 카드 가지고 먹고 사는 쟙이 있는 것을 보면
판단의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영하는 것같다.
어쨋든 그런 상황에서 나중에 재기한것도 토론토에서
얘깃거리가 된 것을 보면 돈 버는 재주보다 또다른
무엇이 있는 것도 같다.
참 실속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가는 팔자인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서 트라우마가 된 기억조차 하기싫은
녹슨 문을 열어 보니 지인들의 따뜻한 도움이 있었다는데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