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식당공사
비즈니스에서 신중한 생각과 예측이 필요한 것 같다.
잘될때는 상승세에 힘입어 뭐를 해도 그저 열심히만
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 것같다.
나는 타고난 순발력과 그 때 그 때 임기응변은 뛰어난
그저 손 빠른 쉐프였던 것 같다.
생각도 빠르고 직감력도 빨라 일단 뛰고 나서 보는 것이
몸에 밴 것 같다.
그때문에 일은 잘 차고 나가지만 경솔함으로 인한 판단력
부족으로 고생을 사서 한다.
그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며 자신을 볼아보고 능력을 짚고 넘어가는 일도
때로는 필요한 것 같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태어나고 각자 능력도 틀린 것 같다.
몸이 빠른 만큼 나는 생각하기를 귀찮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이 들며 그런 부문은 신중한 혜진이엄마와
상의해서 결정하기도 한다.
어쨋든 급한 성격으로 급하게 식당을 사서 그 뒤에 댓가를
아주 비싸게 치루었다.
이천칠년도 삼월말에 에브뉴에 있는 식당의 키를 받아들고 바로 그 다음날 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실내 인테리어는 영범씨가 맡았고 캐노피와 실내 철거
작업등 기계, 전기 사항은 현대설비의 배관기술자 출신
고사장이 맡았다.
그리고 빌딩 퍼밑 관계는 고사장이 소개한 윤 소장이
맡았다.
실내가 너무 지전분하고 대책이 안서 천장에 있던 환풍
덕트부터 바닥의 타일 까지 다 뜯어내었다.
조그만 식당이라도 뜯어내고 보니 엄청난 쓰레기가
나왔다.
그리고 천장의 덕트는 막상 뜯어낼려니 쉽지 않았고
힘이 많이 들었다.
고사장팀은 기술자 두명이 캐너디언이라 그런지 힘이
좋았고 추진력이 있었다.
빠루를 걸쳐 뜯어내는 과정에 철구조물에 손을 다치기도
했다.
며칠간 뜯어내고 식당 뒤편에 쓰레기 트럭안에 같이
산업 쓰레기를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쓰고 버리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영범씨가 바닥에 오크 나무를 깔고 구조물을 세우고 페인트 칠도 대충
하고나니 십일 안지나서 공사는거의 끝난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캐노피 공사를 위한 작업 등도 대충 준비가
되었다.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육주면 끝난다고 엔지니어 윤소장이 얘기를 했지만
막상 돈을 주고 나니 윤소장을 보기가 힘들고 전화연락도
잘 안되었다.
빌딩퍼팉이 있어야만 캐노피 공사도 할 수있고
물론 관계 공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추진을 했지만
윤소장이 도면을 그리고 신청서를 넣어야 하는 데
윤소장의 일이 거꿀로 제일 늦었다.
사실 제일 빨리 했어야 하는 일인데 불구하고 두서가
바뀌어 버렸다.
나중에 보니 오래된 건물의 식당 공사는 이런 일들이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 때 노스욕에 있는 한 식당 맞내촌도 그렇게 어렵게
허가가 나왔다.
그런데 허가 사항이 없으니 공사를 진행시킬수없고
그대로 잠정 스톱되고 이 주후부터 매일처럼 윤소장
사무실에 출근해서 다른 일 끝날 때 까지 기다리다
조금 몇 분 얘기 듣고 돌아서 며칠 기다리고 그러다
도면 몇 장과 신청 서류를 육주가 지나서야 제출 할 수있었다.
공사를 할려면 허가서를 부착해야했는 데 다시 이 주를
기다려야 했던 것 같다.
그동안 서류가 언제 나오는 지 시청에 알아보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너무나 힘들었고 기억하고 싶지않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 공사 기간에 있었던 일은 기억조차 하얗게 탈색된
느낌이다.
그즘에 우리 식당 맞은 편에 네일샾이 오픈하느라 공사를
하고 있었다.
부촌이라 그런지 여자들 손 발톱 소지며 미용에 관련 된
네일샾은 여자들이 돈을 많이소비하느라 그런지 에브뉴거리에 잘되고 있었다.
보통 네일샾은 베트남 계통 사람이 하면 잘한다고 했다.
손길이 섬세하고 특히 몸에 있는 털을 제거하는 노하우가
있어 캐너디언한테 인기가 있다고 있다.
내 생각에는 그런 면도 없잖아 있겠지만 헝가리 정신이
바탕이 아닐까싶다.
우리 식당앞의 공사하는 네일샾은 한국사람이 했는데
그 집 또한 빌딩 퍼밑때뭄에 애를 먹고 있었다.
그집은 비즈니스랑 상관없는 지하에 까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인도계통의 인스펙터가 까다롭게 해서 인스펙트하는
과정에 지적을 받아 지하에 까지 공사가 커져 시간도
길어지고 공사비도 늘어난다고 푸념을 했었다.
그런데 저 인스펙스가 안 왔으면 싶었는데 우리 식당
검사시 하얀 화이브를 쓰고 그 인스펙터가 저승사자
모양 들어왔다.
전기는 별 무리없이 기존의 것을 인정해서 넘어가고
배관도 기존을 인정하면서도 화재에 대비한 자재인지를
첵크했다.
멀쩡한 지하의 배관을 고사장에게 따로 현금으로 이천오백불을 지불하고 검사를 위해 바꾸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부분에는 금속가이드를 설치했었다.
다른 배관 기술자는 육천 오백불까지 견적이 나왔었다.
어쨋든 배관 파트도 그렇게 해서 통과했는데
건물의 지하에 내려가는 벽 부분은 화재에 대비한 단열
보드가 적합한지를 검사했다.
물론 그렇게 했을리가 없었다.
그 위에 그냥 붙히면 될 것 같은데 기어이 도면을
바꾸고 다시 공사를 해서 받아라고 했다.
아울러 지하에 내려가는 문도 철제문으로 바꾸라고 해서
다시 윤소장에게 가서 도면을 만들고 제출하는데
또 일주일이 지나고 육천 오백불을 따로 지불하고 다른
공사팀 문 전문 김 영호씨와 지 목수를 불러서 공사를 했다.
그 과정에 페티오도 따로 오천불을 주고 새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목수는 우리 식당 지하에서 남의 식당 공사할 물건을
틈틈히 만들었다.
이해는 하지만 미리 양해를 구했으면 나도 맘편하게 볼 수있었을 텐데.
그리고 이주 뒤에 검사를 다시 받았다.
어차피 다 바꿀수도 없고 해서 정말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지하도 안내하고 화장실 벽도 문제 될 수있었는 데
다행히 통과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은 캐노피 검사 였는 데 도면을 가지고 규정대로
했는지도 첵크하면서 천장으로 올라가는 덕트의
단열재를 문제 삼았다.
원래 한겹으로 해도 되는데 그리고 공사했던 기술자도
얼마전에 스카보로에서 그렇게 했다는 데 인스펙트는
세겹으로 해라면서 여기는 에브뉴라고 강조를 하며 자기 나와바리
과시하듯 공사 지시를 하고 갔다.
세겹 하는 것은 좋지만 천장의 공간이 부족해서 자칫하면
천정도 뜯어 낼뻔 하면서 겨우 삼일만에 마쳤다.
다시 검사 받을려 신청했더니 담당자는 이 주동안 여름
휴가를 갔다.
누구는 렌트비 꼬박 꼬박 내며 식당도 오픈 못하고 공사를
하고 있는 데 그 때 열 좀 받았다.
다시 이 주후에 신청해서 검사를 받고 나니 팔월 말이었다.
삼 월에 시작해서 다섯 달 렌트비며 재산세를 이만 오천불
주고 원래 리노베이션 말고 검사를 위한 공사비를 만불
가량 따로 지출후에 식당을 오픈 했었다.
혹시 오픈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어서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후에 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러다 검사가 통과 되지를 않아
오픈 못한 식당도 꽤 있었다.
관련 공무원도 자기 사인이 들어가서 언제든지 책임 사항이 있어 함부로 봐 줄수도 없는 것이 캐나다 시스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