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65. 공주 2

박진양 2012. 10. 4. 04:07

그즈음에 웨이츄레스로 일하는 순희라고 중국에서 온

교포출신 아가씨가 있었다. 푸짐하니 여느 중국교포랑

다르게, 그냥 보면 중국사람처럼 귀엽게 좀 뚱뚱한 편이었다.

캐나다에서 살며 외모에 선입감을 가지지않을려고 해서

채용했는 데 첨에 정말 열심히 하고 머리회전도 빨랐는데

어느날 엉뚱한 아가씨가 그만 사랑에 빠져 집안사람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래서 생활을 위해서도 주희씨가 일을 많이 했어야 했는데 자연스레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미스터 강이 비즈니스를 포기하고 몇 년간 주방장

으로서 경험을 쌓겠다고 들어와서 그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했다.

그리고 뒷 주방에는 주윤발 비슷한 용모의 용식이 형이

맡았다.

내보다는 다섯살 정도 많고 주위 분의 소개로 일을 하게

되었는 데 이런 주방일은 첨이지만 꼭 햐야할 절실함이

있으니깐 일도 천천이지만 서서히 늘어 갔다.

솔직히 한사람 한사람은 부족한 듯 싶은 면도 있었는 데

그런 세사람이 뭉치면 다섯 사람 몫을 했다.

용식이 형은 노래도 잘하고 특히 노래방 한번 갔는 데

신들린 채벌린 연주는 정말 일품이었다.

멋있다고 칭찬해주면 화류계생활 삼십년의 내공이라고

되받아쳐 모두들 쓰러졌다.

그 이후로 가끔식 미스터강이랑 세사람이 주축되고

또 다른 직원들도 같이 노래방에 가곤 했다.

귀에 휴지도 꼽고 넥타이로 머리도 짜매고 벽타고

테이블 올라가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나중에는 달러샵에

가서 가발등 소품도 사서 소품 가방을 따로 준비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식당에 일하면서 큰 활력이 되었고

특히 처음에는 울적한 공주 주희씨가 사람이 변해서

명랑하고 홀을 날아다녔다.

캐나다는 넓어도 교민의 바운더리는 좁아서인지

언젠가 부동산 하는 친구가 얘기하다 그 친구 아냐면서

그때 같은 아파트에 잠시 살았던 부자 친구가 이혼후

집도 주고 해서 렌트 아파트 구해달라고 해서 구해

주었다고 하면서 이혼하면 쪽박찬다는 얘기를

들었는 데 그 친구의 전 와이프가 주희씨였다.

참 세상이 좁았다.

그리고 미스터 강이랑 용식이형이랑 호흡이 잘 맞아

서로 친구처럼 허심탄회하게 생맥주도 한잔 하면서

얘기도 많이 했다.

용식이 형이 그때 자기는 버닝러브를 꼭 해볼꺼라고

했는 데 나중에 가슴이 홀라당 타는 사랑을 하게되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쓰 보겠다.

주희씨는 두딸이 우리 애들보다 조금씩 나이가 적었는데

너무 총명하고 귀여웠다.

헌국에서 그때 들리는 말에 싱글맘으로 딸을 한국에서

키우는 데 너무 힘들었다고 들었다.

주위 시선도 좀 그렇고 또 학교에서 아빠오라는 얘기에

외할아버지가 가고 한번은 외삼촌이 가기도 해서

그 자체가 번거럽고도 주위 사람에게 민폐가 되어

할수없이 딸을 데리고 캐나다로 다시 역이민을 왔다는

이웃이 있었다.

그때 주희씨는 일한다고 나와있으면 이웃집 중국사람이

애들이 문제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고 또다른 캐너디언

이웃이 뭔일이 있으면 도와 주었다.

대체적으로 여자 혼자 있으면 캐나다에서는 신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것 같다.

십오년전에 성당의 친구가 이민온지 육개월만에 위암으로

세상을 달리 했다.

내랑 동갑인 찬구의 갑작스런 죽음이 안타까워눈물도 많이 흘렸는 데 주위에서 한 얘기가 애 아빠가

선경지명이 있어 캐나다로 왔다면서 위로를 했다.

정말 영어도 잘 못하는 그 부인을 위해 그때 혜진이 엄마

헉부형중에 정부에서 과부수당을 취급하는 공무원이 있어

소개해서 받게 했다.

당시에 그 부인 명의의 콘도가 있어 문제가 되었는 데

그 분과 상의해서 잘 되었던 것 같다.

경제력없는 사별한 과부는 매달 천 몇백불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전에 그 부인의 따님이 여기서 약학대가 어렵지만

직장은 보장되는데 졸업후 약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희씨도 본인 자랄 때는 모든 것이 유복 했지만

그것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는 교육관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순진무구한 공주일 수도 싶은데도

애들한테 할 만큼 하고는 나머지는 맡기니 애들이

알아서 다했던 것 같다.

내가 보니 애들이랑 같이 놀아주기만 하니 애들이 어른이 되었던 것같다.

환경이 어려우면 애들이 철 든다고나 헐까.

늘 이제는 돈 보다는 착실할 마당쇠를 만나야 한다면서

하곤 했는 데 몇년 전에 정말 주희씨만 위해주는 조그만

키에 소박한 용모지만 뜨거운 가슴과 생활력 그리고 친절한 손길을 가진 마당쇠 아저씨를 만나서

지금은 같이 잘 살고 있다.

그 즈음 혜진이 엄마하고 같이 맥주집에 만나 축하주를

사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주희씨 큰 따님이 공부를 잘해서 이번에 대학을 들어가

캐나다의 미래을 준비허고 있다.

캐나다에서의 장점은 없는 보통의 아줌마도 살아 갈수도

있다는 것 같다.

성경의 구약에 보면 가을 추수할 때 떨어진 나락은

과부를 위해서 두라고 했는 데 법적으로 실행되어 있는

나라가 캐나다가 아닌가 싶다.

절대 이혼 해라는 얘기는 아니고 어렸을 적에 고무줄 놀이

하는 데 남자들이 고무줄을 끊지 여자들이 헤꼬질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처럼 자라서도 여자들은 대개

가정을 지킬려고 노력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캐나다의 남자들은 쪽박 안찰려면 아내에게 잘 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서로 잘 살고자 하는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