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이 산이 아닌가봐유
사스사태가 끝난 뒤에 우리식당을 둘러싼 고급콘도의
인구가 하이웨이 칠번 위쪽의 신 주택단지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그리고 남 쪽에는 올유캔잍 레스토랑이 대세를 이루었다.
사스사태이후 중국식당이 많이 문을 닫고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형 중국 프렌챠이즈 레스토랑이
많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었다.
꽁지 퀸, 꽁지 황제등이 대표적이었다.
꽁지는 중국말로 죽을 뜻하는 데 여러 종류의 죽과
뽁음요리와 해물등 광동요리가 매인 메뉴인데 꽤 인기가
있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일식집을 오픈하거나
양으로 승부하는 올유캔잍 레스토랑으로 많이
바뀌어 경쟁이 더욱 치열 해졌다.
주위에서 우리 식당도 올유캔잍 레스토랑으로 바꾸면
더 나을 거라고 충고를 많이 들어 귀가 솔깃 해졌다.
사스사태때의 충격을 단숨에 벗어나고 싶은 욕심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번 후회없이 해 보기라도 해보자고 맘을 먹었다.
그런데 반대도 만만찮았다.
주로 식당에 전문가인 홀새일 메니저 레이몬드와
식당전문 부동산 중개인 배사장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때 식당의 좌석수가 오십석이 채 안되어
규모면에서 부족하다고 했다.
최소한 칠팔십석은 되어야한다고.
그리고 그정도 매상이면 식당이 잘 되는 편이라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은 한번 맘을 정하면 듣고 싶은 얘기만
들리는 모양이다.
메뉴를 만들어 한번 시도를 했는 데 그야말로 충격 자체였다.
올유캔잍 레스토랑은 부페처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양껏 먹는 데 부페랑 틀린 것은 오다를 해서 그때마다
만든 음식을 먹는 스타일이다.
질이 너무 좋아도 경제성이 없고 중국인이 하는 식당은
주방메뉴가 다양해서 재료비가 덜 들고 인건비도 싸서
유지 되는 데 한국사람이 해서 거의 성공한 예는 없다.
첨에는 반짝 하다가 얼마안가 손들고 나왔다.
나도 한 달 정도 버티다가 어느날 손님이 음식을 양껏
먹고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다시 먹는 것을 보고는
식당할 정나미가 떨어 졌다.
그리고 한달 정도 해서 장부를 정리해보니 매상은
그대로인데 재료비는 곱절 가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다음 날로 원위치 했다.
이 산이 아니었다.
살다 보니 남의 충고를 많이 들을때가 있다.
때로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도 두세번 같은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흔들릴수는 있다.
그때 또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때의 판단 기준은 말하는 사람의 전문성을 토대로
해야돼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에서 일관성이 있는 지를 잘 첵크해야
되었다.
그때 올유캔잍레스토랑으로 바꿔 보라는 사람은 시간
지나서 보니 설겅설겅거리며 아직 자릴를 못 잡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자신이 시장파악을 잘 못했다.
골프 치다보면 누구에게나 장기 하나가 있다.
자기에게 없는 남의 장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기를
개발하는 것이 좋은 점수를 유지하는 것처럼
비즈니스도 과욕은 금물임을 깨달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