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토론토 대정전
캐나다에 실다 보면 가끔 공공서비스 면에서 엉뚱하게
낙후 돼었다고 느낄때가 있었다.
가끔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서 나리를 겪기도 하고,
원인은 노사 협의가 안 되면 그 다음날로 스톱된다.
교사들이 파업도 하고 어떤 때는 학교 청소하는 직원이
파업한다고 학교가 또 문을 닫을 때가 있었다.
경찰도 파업을 했다.
경찰이다 보니 최소한의 직무는 수행하는데 교통딱지를
파업이라고 발부는 하지않고 주의만 주었다.
서로 각자 다양한 소리를 내는 과정의 웬만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름에는 가끔 예고도 없이 전기가 자주 끊겼다.
그러면 올 때까지 바캍만 쳐다 보고 안타까운 맘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들어오는 손님을 안받을 수는 없었다.
주방 오다를 시키면 그것도 갈비 오다 하나만 들어와도
연기가 홀안에 꽉 차서 앞문 열고 뒷문 열고 난리벛꽃장이
되었다.
그래도 보통은 한두시간안에 들어오고 늦어도 세시간이상
안 들어 온적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주위의 도로의 신호등도 나가기 때문에
교통체증도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대로 최대한 빨리
복구를 서둘러서 하는 것 같았다.
정전 시간이 한시간 이상 되면 스시바 숏케이스안의 성에가 녹아 내려 생선위에 떨어지고 또 민감한 생선은
옮겨야하고 바라보는 손님도 오다하다가 기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갑자기 정전이 되면 그냥 입에서 "에이 씨!"
그러면서 칼을 탁 던지기도 했다.
사스를 배웅하는 행사, 한 두달뒤 여름 한참 바쁜 때에
동안의 불경기를 만회할려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는 데
전기가 나갔다.
오후 두세시 정도였나 금방 들어 오겠지 싶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시간이 지나서는 조금씩
불안 해졌다.
저녁에 다섯시 이후에는 바쁜 시간인데 그 때도 안 들어
와서 이게 뭐지 싶었다.
손님을 안 받기도 그렇고 받기도 그런 어정쩡하게 앉으면
메뉴주고 주방 음식을 시키면 고역이었다.
여름에 에어콘도 안되 주방 캐노피가 정지되어 연기는
자욱하지, 그래도 조금 있으면 들어 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여덟시 쯤 되니깐 전기는 안들어오고 대신 경찰이 들어와서 집에 가라고 했다.
그제서야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진것을 느꼈다.
옆의 슈퍼에는 성냥이나 초 그리고 라면 같은 비상식량을
사느라고 난리인데 캐쉬머신도 마비되어 어떻게 팔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큰 슈퍼는 문을 닫아 작은 그로서리 가게에 사람들이
사재기 하느라 모이고 어둠이 짙어지면 안전을 보장
못하기 때문에 경찰이 문닫고 집에 가라고 했다.
그 것이 바로 뉴욕 대정전이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전력 시스템이 복잡한데
어떤 부분은 일단 전력을 생산해서 미국에 보냈다
다시 수입하는 부분도 있고 또 미국에서 수입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었다.
화력발전소는 환경 문제로 못짓고 원자력도 지역 익주의로 넒은 캐나다에서 쉽게 짓지를 못해 미국에서
부족한 전기를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뉴욕으ㅣ대정전을 부른 그 발전소 화재로 토론터에도 정전사태를 맞았다
작년인가 삼성에서 온타리오에 풍력발전소를 짓는
프로젝트를 맡았는 데 야당인 보수당이 보이콧한다고
해서 집권당인 자유당이 싫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하는
보수당이 싫어서 자유당을 찍었다.
그렇게 전기 문제는 정치의 핫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나의 잇슈는 내일을 보장할 수없는 이때에
최대한 많은 재료를 파는 것이었다.
가게에 있는 모든 초를 켜서 촛 불 잔치를 하고 전기가
안되서 솥만 꺼내서 개스불에 밥을 하고 김밥 츄레이
위주로 팔았다.
열시가 넘으니 그 넒은 플라쟈에 우리 식당만 문을 열고
있는 것 같았다.
주방 캐노피가 안되니깐 주방 음식을 못 만들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
그 시간 되니깐 손님이 더 몰려 왔다.
왜냐하면 어차피 집에서도 밥을 못하니 그거라도 확보
할려고 난리였다.
촛불밑에서 밥풀인지 뭔지 엉겨도 계속 만들고 자르고
담고 돈 받고, 돈 받다보니 밖에 꺼뭇 꺼뭇한 흑인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스시바 뒤의 장식용 칼을 두자루 꺼내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 조금 시늉을 했던 궁중무술 흉내를 내서 소리지러면서 칼춤을 추었다.
노래는 못해도 목청은 강청이라 군바리 체질이었는데
그때는 너무 딱이었다.
더러워서 그랬는 지 새벽 한시 까지 팔아서도 폭도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토론토에서 사십팔시간 가까이 정전 됐어도 폭동은
일어 나지않았던 것 같다.
미국 엘에이 하고는 또 다른 분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차분하게 기다렸다.
못 기다리는 것은 냉동고안의 생선이었다.
냉동고안의 생선은 뚜껑을 닫아두면 이십사시간 정도는
괜찮았다.
그이상지나서 못 판것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농부가 아닌데 왜 하늘을 봐야 되나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