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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이5

박진양 2012. 6. 30. 14:53

 

그 당시 처음으로 헬퍼에서 주방장으로 책임을 지고 해보니 신도 났고 의욕이 넘쳐 났다.

장사가 덜 되는 겨울 이었지만 식당 분위기는 활기가

넘쳤다. 무엇보다 사장님께서 내색 않으셨고 장사 안될때

는 멍때리지 않고 청소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었나

보다.

주방 기름 가마 주위는 취약 포인트, 서양 레스토랑 오래된데는 고드럼 거꾸로 기름떡이 올라 오기도 하는데

그정도는 아니지만 그 전에 인도 레스토랑 이었서 상당

했다. 조금이라도 짜투리 시간이되면 가비지 백을 빵꾸내

팔만 내고 뒤 집어 쓰고 빠루와 스크래프 까지 동원 되었다.

선반도 설치하고 페인트 사서 벽과 천장도 칠하고 그리스 츄랩이 새길 래 거푸집을 만들어서 콘크리트를 쳐 버렸다.

지금 레스토랑을 보면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정말 멋있고

주방도 너무나 깨끗하고 설비가 좋다. 투자도 많이 하고 열정과 기술이 잘 어우러져 토론토의

명물 레스토랑으로 캐너디언 주류 방송국송에도 소개 되고 그 당시에도 방속국에서 특별 취재가 종종 있었다.

한번은 스시바에 근무하는 파일럿 한 아저씨와 사소한

다툼이 있어 퇴근후 기다리면서 벼르고  계셨다.

내가 사과드리고(의욕이 넘치다 보면 가끔 부디친다) 술 한잔 산다고 직원 분들이랑 같이

맥주집에 가서 얘기해보니 별 것도 아니었다. 

얘기하다보니 재미있고 내친 김에 가라오께 바에 가서

새벽 네시 까지 직원들 다 같이 달려버렸다.

그날밤 한 아저씨가 최성수의 동행,해후를 불렀는 데 

너무나 좋아 두고 두고 기억이 난다. 너무 감동이어서.

끄타고 나오니 눈이 오나 싶더니 너무 많이 와서 집에 가니 거의 아침

여덟 시가 다 되어 다음날 거의 바로 출근 했는데도

모두드 지친 기색없이 즐겁게 일 할수 있었다.

그래 사람은 빵만 으로 사는 것은 아닌가 보다.

주방 생활은 절대 어색한  분위기면 안좋은 거였다.

그 뒤에도 종종 각종 빠, 스트립 빠 까지 섭렵하면서

"엇샤! 엇샤!" 신나게 달렸다.

그리고 파일럿 한 아저씨는 내보다 일곱 여덟 많으셔도 내한테 깍드시 대해 주어 

나도 조심 하는 데 허허 하는 모습에 장난도 치곤 했던 겄같다.

한국에서  항공기 내  보안요원 이셨는데 파일럿이 부러워 캐나다 비행학교를

졸업하셨고 취직 하면 사 오천불 받지만 세금 공제후면

많이 줄어 들고 겨울이 되면 잡이 없어 힘들고

식당은 주급을 캐쉬로 받을 수 있고 기술익힌 뒤

자영을 꿈 꾼다 했다. 피부도 하얗고 얼굴조 핸슴하고

영어가 유창하고 쇼맨십도 좋아 캐너디언 단골 손님

한테 인기가 많았다.

어쨋든 인간미가 있어 집 앞 선술집에서 종종 한

잔씩 했다. 여러가지 얘기 집안의 사춘기 애들 얘기 까지.

그때는 우습게 들었는 데 내가 그 나이가 되니깐 현실 이었다,

시베리아 얼음땅밑에도 먹을 만한 이끼가 있듯이 길고 지루한

주방 생활에도 즐거울 이유와 여유가 있었다.

그 전에 편의점 캐쉬어일도 해 보았는데 여섯 시간 밖에

근무시간을 주지 않아 생활이 힘들었고 그 짦은 시간도  돈 받고 물건만 주는 단조로움에 

시간이 더디고 무엇보다 도둑질이 많아 의심하는 것도

힘들었다. 레스토랑은은 배 고픈 손님 밥 만들어 주니깐

진심으로 탱큐 하는 것 같아 좋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함께 하는 것이

더욱 좋았다.

사장님 께서는 상당히 엄한 분 같은데도  부드럽고

내 한테는 더욱 너무 잘 해 주셨다.

학교 졸업후 서울의 유명 호텔 일식부에서 시작해

일본어도 유창하고 일본에서도 근무한 베테랑

요리사 이면서도 틈나는데로 영어 신문을 사전 찾

으면서 공부 하시는 모습도 보기 좋았디.

타고난 리더쉽과 인정이 넘쳐났다.

그런 사장님 밑에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었다, 지시만 따르면.

 근무시간 하루 열 세 시간은 숫자에 불과 했고 시간의 상

대성 원리가 이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그때는

일이 즐거웠고 일 하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