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골프 얘기
캐나다에서 한국보다 쉽고 싸게 할 수있다면 골프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테니스 코트 가는 것보다 쉽게 접근할 수있는
것이 골프이고 여기에서는 그만큼 대중적이고
골프 얘기 빼면 별로 할 얘기가 없다.
나도 혜진이 엄마가 계를 하면서 혼자 테니스 얘기하며
왕따 비슷한 분위기가 안스러웠는지 한번
배워 보라고 해서 시작이 됐다.
사실은 그전에 샘아저씨가 동업하며 조금씩 해보기도 하고 레베카 신랑 테리에게 좀 기본기를 배웠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 했을 때 렛슨도 받고 해서 일년 정도
치면서 보기 게임을 했던 것 같다.
골프하고 낚시는 뻥을 까도 이해해야 할 것같다.
그만큼 희망 사항이고 요망 사항이라 현실과 좀 떨어진 것
을 좀 처럼 인정 못한다.
아마 게임 자체로 보면 현실과 가장 가까운 잔인한 게임
인데 웬만한 수준에 이르기 까지 그것을 못 느낄 뿐이다.
보기 게임도 룰을 어떻게 적용하고 코스에 따라 달라져
모든 코스에서 어지간한 상황에 흔들리지않고 그것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여기 살면서 번호판 숫자를 대신해서 아엠보기,
또는 보기플레이어, 보기골퍼 라고 달고 다니는 것을
몇 번 보았다.
번호판에 자기가 원하는 번호나 이름 넣으면 보통 이 삼백불이 따로 든다.
싱글은 못 봤다.
싱글치는 사람은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싱글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의 생활을 하는 사람
이면 극히 드물다.
웬만한 싱글은 그대로 싱글이 되기도 한다.
내 아는 분 싱글 좋아해서 골프장에 살다 언젠가 집에
갔더니 키가 바뀌었단다.
그 날로 돌싱이 되었단다.
여기 골프의 제일 권위 있는 백상배 대회를 세번 우승한
분의 경우이다.
하지만 친구끼리 수준에 맞춰 즐길수 있는 편안한
스포츠가 골프이다.
못치는 친구 적당히 봐 주고. 뭐 요망 사항인데 어떤가
싶다.
아마 그때는 요망 사항 보기 플레이어가 아닌가 싶다.
한 일년간을 연습하고 한국사회의 유지 분들인 계원
형님들 틈새에 가끔씩 끼어 들었다.
첫 게임에서 나빼고 세분은 싱글이었다.
타당 오불에 점수가 양 파가 넘어도 끝까지 세는 죽음에
가까운 게임이다.
물론 그분 들은 구력이 이십년 이상 지역 사회의 베테랑
골퍼라 그 정도는 돼야 긴장감이 있어 흥미를 느끼는 듯
했다.
나한테는 네 개 잡아 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냥 날로 먹을려고 했던 것 같은데웨만해서 핸디를 안주는 스타일이었다.
그날 첫 게임에 골프 백을 메고 다니며 쳤다.
다들 끌고 다니는 데 그렇게 배워서 나갔는 데 이
내기에 무모한듯이 생각했었던 것같다.
미시사가의 브리타니아 골프장 파 칠십이었던 것같은데
한분이 칠십사타, 또 다른 분은 필십오, 내가 구십일,
마지막 분이 백 오를 쳤다. 아마 그분은 파 스리 코스에서
공이 숲 속에 들어가서 어찌어찌하다 그홀에서만 아홉개
정도 오버 했었다.
나는 이삼십불 정도 잃었던가, 아주 나이스한 선방을
했었다.
끝나기 전까지 정신줄을 놓으면 안될 것 같은 긴장감을
가졌다 클럽하우스에서 치킨 윙에 맥주마시며 지난
그분들의 추억 얘기며 그 연세에도 여자 얘기에 웃고
하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골프가 이 맛에 치는 구나 싶었다.
나는 그날 선방을 했다며 그보다 샛이 좋다며 별명이
박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주 뒤에 다시 한번 그 멤버로 디어크맄에서
다시 진검 승부를 했다.
그때는 지난번에 백오를 쳤던 분이 칠십오를 치고
나는 그때 구십이를 쳤다.
그 한달 뒤에는 글렌 세다에서 쳤는 데 다행히 보험이
될 수있는 계주분이 오셔서 오십불 정도를 처음으로
땄다.
그 분은 키도 크고 구력도 되고 계를 할 땐 골프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하셨는 데 그날은 컨디션이 안되었던 것 같다.
후반 홀에 쫑나서 기권했다.
참 골프를 나중에 해 보니 쉽지않았다.
오래 쳐도 그 이상 잘 늘지도 않는게 골프이고
포기했다 마음 먹으면 다시 잘 되기도 하고
세상 사는 것 처럼 희안 하게 오르막 내리막,
냉탕 온탕을 오고 간다.
작년 부터는 혜진이 엄마 가르쳐 같이 다녔는데
올해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집 뜰에서 연습만 하고 있다.
캐나다 사는 동안은 언제 쓸 줄 모르는 칼이라 꾸준히
갈고 있다.